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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 제주시의 마을 이야기 > 제주의 관문, 건입동 > 고시열 할머니 이야기

  • 고시열 할머니의 가족과 성장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건입동 해녀탈의실은 서부두수협직판장 뒷골목 허름한 창고 이층에 있다. 이렇다 할 간판이나 표지판 같은 것은 없다. 2층으로 올라가면 두 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샤워장이고 다른 하나는 휴게실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샤워실이 보이고 그 뒤편으로 개인용품을 둘 수 있는 사물함과 책상 하나가 놓여 있는 휴게실이 있다. 책상위에는 전화가 놓여 있고 사물함은 한 20여개 정도가...

  • 고시열 할머니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해녀 직업이라는 게 남들은 천하다고 하지만 자본 안 들어서 돈 벌어 살 수 있다면서 남편이 죽고 아이들 다 키운 것이 해녀 직업이라고 해녀 일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남편이 죽고 본격적으로 서부두에서 물질을 다시 시작했을 때도 물론 상군 노릇을 했다. 탑동에서는 천추(우미)가 많이 나왔었다. 옛날에는 미역과 우미가 주로 작업 대상이었고 20여 년 전부터 소라도 수출이 되고, 횟집...

  • 고시열 할머니의 사회활동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시열은 서부두 해녀 탈의실 해녀조직 이외의 특별한 공식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단, 이씨 며느리 친목을 들었었는데 4촌, 5촌, 6촌 며느리들이 모여서 먹고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서로 품앗이를 하며 도와주고 집안일도 의논하는 모임이다. 고시열이 활동할 때는 계모임처럼 돈을 모으지는 않았다고 하나 요즘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모임에 나가지 않은지 3~4...

  • 고시열 할머니의 일생의례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시열은 14살에 약혼해서 1948년 음력 12월 27일 16살에 결혼을 했다. 시집도 금릉에 동네에서 결혼했다. 남편 이름은 이두행이고 두 살 위였다.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어머니 살아계실 때 시어머니가 동네에서 오고 가며 보고는 고시열을 착하고 예쁘다고 며느리 삼겠다고 했다. 어른들끼리 와서 술 한 잔 하면서 사돈하자고, 결혼 시키자고 얘기 한 것이 약혼이었다. 결혼 전 데...

  • 고시열 할머니의 일상생활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시열이 한림읍 금릉에 살 때에는 마당은 아주 넓었고 방 2개, 마루, 부엌, 고팡이 있는 초가집이었다. 남편이 죽고 어린 자식들을 키우면서 물질을 하여 번 돈으로 1984년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샀다. 고시열이 집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지어진 집을 샀다고 했다. 처음 이사할 당시에는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가 이사를 가고 5일장이 그 자리에 생긴다고 했었다. 5일장이 서는 날에...

  • 고시열 할머니 개인 연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33.4.2 한림읍 금릉리 출생 (호적상 1935년 생으로 올라가 있음) 1939 7세 때 아버지가 뺨을 비비면 수염 때문에 따가웠던 기억이 가장 어릴 적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임 1940 일본에서 언니, 오빠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라고 책가방과 옷을 사서 보내줌 1945 야학에서 일본어를 배우다가 해방되어 국어 1을 배움 1946 약혼 1947 예비 시어머니 사망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