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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 제주시의 마을 이야기 > 제주의 관문, 건입동 > 고봉만 할아버지 이야기

  • 고봉만 할아버지의 가족과 성장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봉만이 집 위치를 설명할 때 건입동 어린이집 옆에 대나무 많은 집이라고 했다. 동초등학교 후문에서 조금 올라온 푸르넷 공부방 앞에 차를 세우고 인성 이용원 앞으로 난 길을 따라 건입동 어린이 집을 찾아 들어갔다. 처음에는 어린이집 정문 앞에서 이집 저집 기웃 거렸지만 금새 눈에 들어오는 집이 있었다. 어린이집을 등지고 남쪽으로 흔들리는 대나무 잎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을...

  • 고봉만 할아버지의 직업 이야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4·3 사건으로 중산간 마을의 토벌이 시작되었을 때 고봉만의 형들은 그전에 일본으로 돈 벌러 갔고 하나 남은 아들인 고봉만이 위험해질까봐 아버지는 해안가 마을로 내려가라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소 판돈을 쥐어주자 그걸 가지고 혼자 열다섯에 내려와서 건입동 서부두 쪽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어린 때는 이것저것 심부름을 하다가 가마니 장사를 시작했다. 제주의 가마니를 ‘멕’이라고 하는...

  • 고봉만 할아버지의 사회활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89년 3월 1일 여러 가지 전통문화 등을 살려야 한다는 취지에서 건입동 향토문화보존회를 만들었다. 처음 회장은 그 모임 중에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하는 어른이 하는 것이 순리이므로 김태선씨가 1대, 2대 보존회장 하다가 두 번째로 고봉만이 맡아서 3대(1993.2~1995.1), 4대(1995.2~1997.2) 회장을 지냈다. 1997년 5월 2일 건입동 향토문화보존회는...

  • 고봉만 할아버지의 일생의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군에서 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가 빨리 장가가라며 장가가서 부인이 있어야 돈을 모은다는 독촉에 장가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나 장가를 가려면 예나 지금이나 직업이 있거나 돈이 많아야 하는데 그가 가진 것은 맨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아버지는 궁합이 맞는 나이를 알아보시고는 동쪽으로 가지 말고 서쪽으로 가서 새 각시 감을 구하라고 했다. 그가 현재 자주 애용하는 이발소...

  • 고봉만 할아버지의 일상생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59년 3월 20일에 결혼하고 3월 22일에 할아버지 제사, 또 23일은 지금 살고 있는 집터 집 지으려고 토신제를 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한 일 년 동안 집을 지었는데 목수는 처남이 일꾼은 그가 둘이서 집을 다 지었다. 밥 힘으로 일을 한다고들 하는데 그와 그의 처남은 술 힘으로 집을 지었다고 했다. 어찌나 술을 잘 먹었던지 술 열 넉 되 들어가는 그 술독에 술을 두 사람이...

  • 고봉만 할아버지 부부의 개인연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31.6.20 제주시 영평 하동 924번지 출생 (호적등재 1935년, 누나1 형2 여동생1, 형제들은 현재 일본 거주) 1934 소 먹이러 다니기 시작 1936 짚신을 직접 만들어 신기 시작함 1948 거주지 영평동에서 건입동으로 옮김 1949 가마니 장사와 휘발유 밀매로 생계유지 1952 제주시 건입동 1068번지로 부모가 이사 옴 1954 군 입대(육군) 1956 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