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 제주시의 마을 이야기 > 행정의 중심지 묵은성, 삼도2동 > 김금심 할머니 이야기

  • 김금심 할머니의 생애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금심의 부친 김태준은 법원 서기로 출발해서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한 후 제주도로 내려와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변호사로 일생을 보냈다. 일제강점기에는 법원 사무원이었고 광복 후에 사법제도가 바뀌면서 법관이 부족하니까 임시 법관 후보 시험이 있었다. 그 시험에 합격해서 판사가 되었다. 서울법원에 시보로 있다가 4·3사건 때는 서울에서 근무했고 그 후 제주도로 내려왔다. 전쟁...

  • 김금심 할머니의 성장과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금심은 1941년에 제주북소학교에 입학해서 5학년 때 광복되었다. 제주북소학교는 남녀반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남자는 2학급, 여자는 1학급이었는데 광복 후에 일본에서 고향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학생수가 많아졌다. 1, 2반은 정상적인 취학생들이고, 3반은 나이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한 학급은 남녀혼성반이었다고 한다. 김금심은 김홍식처럼 제주북국민학교에 다녔는데...

  • 김금심 할머니의 직업과 사회 활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금심은 제주여중 4학년(중고등학교 통합 학제임) 때 교원양성소에 들어갔다. 교원양성소는 지금 제주교육대학교 전신이다(교원양성소→사범학교→교육대학). 당시 교사는 동광양에 있는 기와공장에서 운지당(동문시장 골목을 올라가면 있음)으로 옮겼다. 교원양성소에서 한 6개월 교육을 받으면 준교사자격증을 주었고 교생실습도 했다. 김금심은 교사자격증을 취득한 후 도두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

  • 김금심 할머니의 일생의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김금심은 1955년에 약혼식을 했는데 신랑집에서 한복 한 벌, 금반지(쌍가락지)와 시계를 받았다. 시아버지와 친척 몇 분을 신부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했으며, 이것이 약혼식이었다. 이날 사주단자도 갖고 온다. 그 해 가을로 결혼날짜를 잡았는데 영장이 나와서 한 2년 미뤄졌고 은행원이어서 직장생활을 했다. 김금심이 결혼할 때 시댁친척들한테는 버선 한 켤레가 최고 예단이었다고 한다...

  • 김금심 할머니의 일상생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제주목 관아를 ‘영’이라 불렀고, 제주목 관아와 관덕정 사이에 있는 골목 일대를 ‘영뒷골’(영의 뒤쪽에 있는 골목이라는 뜻임)이라 한다. 처음에는 ‘영뒷골’에 살다가 태평양전쟁이 한참일 때 집을 지어서 이사했다. 김금심은 4·3 때 여중생이었고 북교 후문 전신전화국 사택 근처에 살았다. 그 당시 이 근처는 주택가가 아니었다. 묵은성에도 농사짓는 밭들이 있었다. 주로 보리농사를 했...

  • 김금심 할머니 개인연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 1932년 11월 29일(양력) 김태준의 5남매 중 큰딸로 태어남 - 1940년 서부유치원 졸업 - 1941년 제주북초등학교 입학 - 1945년 제주북초등학교 재학 때 광복을 맞이함 - 1947년 제주여자중학교 입학 - 1950년 한국전쟁으로 대학진학이 좌절됨. 교원양성소 진학 - 1951년 초등학교 교편생활 - 1954년 은행원이 됨 - 1955년 3월 김홍식과 약혼식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