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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 제주시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근현대 > 일제강점기

  • 항일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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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전까지 제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독립운동.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의 역사는 타민족의 지배 하에서 더욱 심하게 왜곡되었으며, 이 시기 제주 사회는 한국의 다른 지역 못지않게 심한 식민지적 수탈과 착취, 민족적 차별을 받는 가운데 이전 시기보다 예속 상태가 더욱 심화되었다. 일제는 1912년부터 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해안 일주 도로 포장에 나서 1918년에 확장...

  • 일본에서의 제주인의 항일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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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제주인들이 벌였던 항일 운동. 일제 강점기인 1923년 12월 15일 제주도와 오사카 간에 정기 항로가 개설된 후 많은 제주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갔다. 이러한 사람들 중 일부는 사회 단체나 학교, 노동 현장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해방될 때까지 치열한 항일 운동을 벌였다. 일본으로 진출한 제주인들은 오사카에 많이 거주하였으며, 주로 여성은 방직 공장,...

  • 제주 3·1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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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3월에 제주도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벌인 항일 운동. 제주 3·1 운동은 1919년 3월 21일부터 같은 해 3월 24일까지 4일간 조천 지역을 중심으로 인근의 함덕·신흥·신촌 등지에서 일어난 항일 운동이다. 1919년 3월 1일에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 시위 운동의 영향을 받아 제주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 운동을 통해 독립 의지를 알리고자 하였다. 조천의 유림 세력들...

  • 강창보 탈출 협조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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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5월 제주도 야체이카 책임자 강창보를 친구인 강병희(姜炳喜)가 일본 오사카로 탈출시킨 사건. 강창보는 신인회 간부이자 국제 공산당의 승인을 받은 조선공산당 당원이었는데, 제주청년연맹 활동을 하다가 1928년 8월 제4차 조선공산당 검거 때 김택수·송종현과 함께 체포되었다. 1931년 1월 4일 석방되어 제주도로 돌아온 강창보는 제주청년동맹이 직면하고 있던 침체 상황에서...

  • 광주 학생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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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되어 1930년 1월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된 학생 항일 운동. 1929년 광주 지역의 중등학교에는 비밀 결사 성진회에서 대중 단체 독서회 중앙부로 이어지는 조직이 있었다. 독서회 중앙부는 1929년 11월 3일의 우발적인 한일 학생간의 충돌 소식을 듣고, 곧 투쟁 방향을 일제에 대한 독립 투쟁으로 돌릴 것을 학생들에게 지시했다. 1929년 11월...

  • 기미년 격문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9년 제주도에서 구우면을 중심으로 서당 훈장들이 격문을 붙이다 발각된 사건. 1919년 3월 21일부터 3월 24일까지 신좌면 조천리(현재의 조천읍 조천리)에서 일어났던 독립 만세 시위는 제주도 전역에 독립 운동의 의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 운동에 영향을 받은 구우면 저지리(현재의 한경면 저지리)의 서당 훈장 박세현, 낙천리(현재의 한경면 낙천리)의 김여석·조무빈, 신좌면...

  • 독립군 군자금 모금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9년에 제주도에서 독립군 육성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해 임시정부로 송금한 사건. 1919년에 상해 임시정부가 국내에 군자금을 모금하여 줄 것을 요청하자 제주 지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군자금을 모아 송금하려는 목적이었다. 1919년에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군 육성 군자금으로 5천 원을 모금하여 줄 것을 국내에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독립희생회의 연락원이었던 김창규는 「임시정부...

  • 무극대도교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36년 제주도에서 무극대도교 교조 강승태가 조선 독립을 주장하는 포교 활동으로 일제에 탄압당한 사건. 무극대도교는 제주 중문 대포리 출신 강승태가 보천교 및 정감록 풍수설 등과 무속신앙을 혼합하여 우주만물의 흥망성쇠는 무극대도교의 법리에 의해 좌우된다고 하는 논리로 창설한 종교이다. 1935년 이래 중국에서는 항일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이에 19...

  • 미륵 불교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42년 제주도 내 미륵 불교도들이 독립군 참여를 모의하다 체포된 사건. 양붕진(梁鵬進)·양계초(梁啓超)·송태옥(宋泰玉) 등 제주 지역의 미륵 불교도들이 모여 독립군에 참여할 것을 모의하다가 체포되어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실패하였다. 강증산의 제자 김형렬이 세운 미륵 불교는 1938년 제주에 들어왔는데, 일본의 통치를 부정하고 장체 용화세계(龍華世界)가 실현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 부태환 항일 투서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28년 2월 12일 부태환(夫泰煥)이 언론사 투서함에 일본 천황에 대한 비판의 글을 투서한 사건. 제주공립농업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부태환은 1927년 봄부터 『동아일보』와 잡지인 『현대평론』, 『조선의 빛』 등에 실린 사회 문제 관련 기사에 많은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1928년 2월 초 부태환은 제주면 1도리 자신의 하숙집인 고영희의 자택에서 동숙하던 제주공립농업학교 2...

  • 신인회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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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년 5월 신인회 핵심 회원인 김택수(金澤洙)와 송종현(宋鍾炫)이 체포된 사건. 1920년대 결성된 각종 청년 단체에서는 야학, 개량서당, 민립대학 설립 운동 등을 통한 대중 계몽 운동에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계몽 운동이 일제에 타협하는 결과를 낳게 되자, 계몽 운동에 힘썼던 청년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사회주의 운동은 계몽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 야학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일제 강점기 때 마을 향사에 모여 한글과 산수 등을 익혔던 문맹 퇴치 운동. 야학 운동은 일제하 식민지 제도 교육으로부터 배제된 민중들의 의식화를 위한 민중 교육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던 운동이다. 제주도의 야학 운동은 3·1 운동 이후 제주 지역 청년들이 계몽 운동 차원에서 노동 야학을 개설, 교사로 참여하여 대중 계몽을 벌임으로써 시작되었...

  • 우리계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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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에 제주도에서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했던 고병희(高秉禧)와 조대수(趙大洙)가 검거된 사건. 사회주의 운동이 소강 상태에 이른 1929년에 아나키즘 사상에 입각한 대중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아나키스트 고병희는 공산주의 사회 건설보다 무정부주의 사회 건설을 주장하였다. 우리계(宇利契)는 표면적으로는 친목계였으나 실제로는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하여 교통기관, 생산기관 등을 장악하고...

  • 제주 공립 농업 학교 학생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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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6년 제주 공립 농업 학교 학생들이 일본인 교사를 퇴출하기 위해 일으킨 동맹 휴학 사건. 제주 공립 농업 학교 학생들은 일본인 교사 야나기다 히코히토[柳田彦二]가 평소에 한국인을 멸시하고 수업 태도도 불성실한 것을 문제삼아 1926년 6월 25일 동맹 휴학을 결의, 실행하였다. 학생들은 부적절한 일본인 교사의 퇴출을 요구했으나 학교 측의 완강한 대응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하루...

  • 제주 보통학교 학생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28년 제주 보통학교 학생들이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여 일으킨 동맹 휴학 사건. 제주 보통학교 학생 운동은 1928년 2월 17일 제주 보통학교 수채에 붙어 있는 격문을 학교 당국이 수거하여 감춘 것을 알고 학생들이 공개를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학교 당국의 불성실하고 고압적인 태도에 동맹 휴학을 단행하였으나 1928년 2월 21일 경찰에 의해 학생들이 검속되면서 동맹...

  • 제주 적색 농민 조합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34년 제주에서 농민 계층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항일 조직을 재건하려다가 일제에 적발된 사건. 일제는 1930년대 초반 제주도민과 사회주의자들의 결합을 차단하고 제주도민의 황국 신민화와 경제적 수탈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제주 지방에서 농촌 진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각지에 민풍 진흥회(民風振興會)라는 민간 관제 조직을 강화하고 진흥회, 자강회 등 진흥 단체를 새로이 만들고 주...

  • 제주 청년 동맹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28년 제주 지역에서 발생한 일제가 공산당 당원들을 체포했던 사건. 1928년 8월에 제4차 조선 공산당 검거 사건이 있었다. 제주도에서도 공산당 당원이었던 김택수·송종현·강창보·김정로·윤석원 등이 체포되었다. 일제는 이로써 제주 청년 동맹과 지부의 활동을 간섭하고 집회를 봉쇄하였다. 또한 1929년 8월 열릴 예정이었던 제주 청년 동맹 제2회 정기 대회를 금지함으로써 제주 청...

  • 조선 학생 전위 동맹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29년 제주 출신의 김순희 등이 비밀 결사인 조선 학생 전위 동맹에 가입해 항일 투쟁을 벌인 사건. 비밀 결사인 조선 학생 전위 동맹의 맹원들은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운동이 발생하자 격문을 제작해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일제에 검거됐다. 조선 학생 전위 동맹의 맹원들 중에는 중앙 집행 위원이었던 김순희 등 제주 출신 유학생들이 다수 있었다. 1929년 전국의 중...

  • 조천읍 소비조합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27년 제주도 조천읍에서 결성된 소비조합의 주도로 일어난 항일운동. 신좌소비조합은 1927년 김류환(金瑬煥) 등 당시 조천리 청년 20여 명에 의해 창립되었다. 목적은 실비로 물품을 판매함으로써 리민(里民)의 경제적 편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역대 조합장 및 이사들로 김순탁(金淳鐸)·김시범·김운배(金沄培) 등이 있었고, 조천만세운동과 관련된 자가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 추자도 어민 항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일어났던 어민 항쟁. 추자어업조합장 김상진(金相鎭) 등은 식산은행 제주지점에서 4,000원을 차입, 소금을 구입하여 시중 가격보다 비싸게 조합원에게 팔았다. 또한 어민이 채취한 천초(天草)를 김상진 조합장과 이사 황석희(黃錫熙) 및 면 직원이 공모하여 강제 매수하려 하자 추자 지역 어민들이 이에 항의하고 나섰다. 그러자 김상진은 오히려 어민들을...

  • 한영섭의 비문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시대 제주에서,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한영섭의 죽음에 비문을 세우자 경찰이 관련 청년들을 검거한 사건. 제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였던 한영섭의 장례를 치르면서 함덕리 지역 청년동맹원들이 선동적인 깃발과 비문을 세우자, 일본 경찰이 관련자를 모두 검거한 사건이다. 1931년 1월 15일 제주 함덕리 출신으로서 일본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운동가인 한영섭이 도쿄에서 사...

  • 해녀 항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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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에 해녀 조합의 횡포에 항의하여 제주 해녀들이 벌인 시위. 1930년대 접어들어 해녀들의 권익을 보장해 주어야 할 해녀 조합이 철저히 어용화되어 그 횡포가 극에 달하였다. 제주도 해녀들의 생존권 수호가 목적이었다. 1931년에 해녀 조합 측에서 하도리 해녀들이 캐낸 감태와 전복의 가격을 강제로 싸게 매기려 하자 이에 해녀들이 강력 항의하였다. 거센 항의에 부딪힌 해녀 조합...

  • 화북리 청년회 사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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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화북보통학교 학생운동에 합세한 것을 빌미 삼아 화북지부 청년동맹원이 대량 검거된 사건.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 제주 화북보통학교에서 친일 교사와 학생들 간의 대립이 있었고, 제주청년동맹 화북지부 동맹원들은 이 일에 적극 개입했다. 그러자 일본 경찰은 청년동맹 화북지부 등을 수색하고 관련자를 비롯한 청년동맹원을 대량 검거했다. 1929년 5월 하순...

  • 계림 동지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 김봉각(金奉珏)이 일본에서 조직했던 비밀 결사 단체. 김봉각은 조천면 신흥리 출신으로 계림 동지회를 조직하여 동지들을 규합하다가 검거되어 실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조국에 잠시 돌아왔다가 1946년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조총련의 주요 간부직을 맡아 활동했으며 사업가로도 성공하였다. 1991년 조천만세동산에 3·1 만세 운동 기념탑을 새롭...

  • 대한매일신보 제주 지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07년 제주성 내 일도리 객사동에 설립되었던 『대한매일신보』를 보급하기 위한 제주 지역 지사. 『대한매일신보』는 노일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특파되었던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Daily Chronicle)』지의 특별 통신원 배설(裵說, Ernest Thomas Bethell)이 같은 신문사 특별 통신원이었던 토마스 코웬(Thomas C. Cowen), 그리고 영어에 능통하...

  • 반역자 구락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21년 제주성 내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제주 지역 최초의 진보적 청년 단체. 사회주의 사상 연구를 위한 사상 단체로 설립되었다. 3·1 운동 이후 1920년대 제주 지역에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됨에 따라 최초로 사회주의 색채를 띠고 결성된 모임으로, 중심 구성원에는 홍순일(洪淳日)·김택수(金澤洙)·한원병(韓元柄)·장종식(張鍾植)·장희순(張禧淳)·한상호(韓相鎬)·강창보(姜昌...

  • 제주도 야체이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제주도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비밀 조직 단체. 과거 지식인 중심에서 노동자·농민 중심의 조직을 결성하여 조선공산당의 재건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1930년 혁우동맹은 구좌면 일대에서 강창보를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나 뚜렷한 활동 사항은 없었다. 1931년 5월 15일 신우면 애월리 김원희의 결혼식에 참석한 강창보·신재홍·오대진·이익우·김한정 등은 그날 밤 김원희의 방에서 숙박하...

  • 제주 청년 동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28년 4월 제주 청년 연합회 후속으로 결성된 사회주의 청년 단체. 청소년들에게 민족 계급 의식을 함양하게 하고 사회주의 이념 하의 대중 운동을 지향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제주 지역 내의 사회주의자들은 1925년 3월 신인회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청년 운동을 전개하였다. 신인회의 활동이 일제의 탄압을 받자 1925년 9월 제주 청년 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제주...

  • 제주 청년 연합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제주 지역의 여러 청년회 대표들이 모여 설립한 사회주의 단체. 제주 청년 연합회는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한 청년들에 의해 제주 지역의 청년회를 하나로 연대시키고 전국적 조직인 제주 청년 총동맹과의 연합을 위해 설립되었다. 1925년 9월 23일 설립된 제주 청년 연합회에는 가파청년회·모슬포 청년회·온평 청년회·서귀포 청년회·함덕 협성 청년회·신촌 청년회·화북 청년회·제주...

  • 제주 청년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제주 지역 사회 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던 청년 단체. 제주 청년회는 조선 민중 해방 운동의 선구가 되기를 기도한 18세 이상 40세 이내 청년의 통일 단결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청년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지 않았으며 한국 사회에서 청년 단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일제 침략기부터이다. 최초의 청년 단체는 1918년 제주읍 내 유력자 집안 출신 청년들...

  • 결7호 작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45년 제주도에서 일제가 준비했던 일본 본토 방어 작전. 태평양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 일본은 1945년 2월부터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결호 작전을 준비한다. 이중 제주도에서의 작전은 결7호 작전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고, 예하에 제96사단, 제111사단, 제...

  • 토지 세부 측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일본이 제주 지역의 토지조사사업을 위해 기초 자료를 마련한 사건.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대다수 제주 농민들의 농지를 몰수하거나, 세금부과 대상지를 확대하여 지역민들을 수탈한 사건이다. 일제는 1913년 8월 5일 제주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자는 토지조사령 시행규칙에 의해 신고서를 작성하여 1913년 8월부터 1914년 5월까지 제출하도록 조치하였다. 이에 토지 소...

  • 제주 토지 조사 사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3년부터 1917년까지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시행한 대규모의 국토 조사 사업. 제주도에서의 토지 조사 사업은 1913년부터 2년 동안에 걸쳐 토지 소유주로부터 신고를 받아 처리하고 불복 신고(不服申告)를 받아 재결(裁決) 결과를 처리하였으며 1917년 일제의 강권으로 완료되었다. 제주 지역에서는 세부 측량(細部測量)이란 명칭으로 통용하여 왔다. 일제는 우리나라 전역에 대해 식민...

  • 한라산 임산물 처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1년 일제가 새로운 산림령을 공포하여 제주도에서 단속을 강화한 사건. 일제는 한일 합방 이후 기존의 산림법을 폐지하고 삼림령을 새로 제정하여 공포하였다. 이로 인해 조선인은 함부로 벌채를 하지 못하는 대신, 일본은 자신들이 필요한 곳에는 마음대로 유출해가는 식민지 정책을 합법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일제는 영림창을 설치하고, 1908년 1월 24일 법률 제1호로 제정된 「산림...

  • 교래리 비행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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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1945년 일본 육군이 만든 특공부대용 비밀 비행장. 교래리 비행장은 특공부대용 비밀 비행장으로 만들어져, 당시 지역 주민들도 이 곳에 일본군 비행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는 비행장 시설이 맨땅이나 풀밭을 단단하고 평탄하게 다져서 활주로 등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깊숙한 산중에서 일본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진행되었...

  • 정뜨르 비행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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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이 만든 육군 비행장. 정뜨르 비행장은 당시 제주읍에 있었던 일본 육군 서비행장을 일컫는다. 정뜨르 비행장이란 이름은, 당시의 지역 주민들이 비행장 부지를 ‘정뜨르’라고 한 데서 연유한다. 일제 강점기 제주도에 들어선 정뜨르 비행장과 교래리 비행장, 알뜨르 비행장, 진뜨르 비행장들은 1944년 말부터 1945년 초까지도 일...

  • 진뜨르 비행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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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이 건설한 육군 비행장. 육군 동비행장이라고도 불렀던 진뜨르 비행장 건설은 1943년부터 시작되었다. 지역 주민들이 ‘진뜨르’라고 불렀던 넓은 평야 지대에, 제주도 주민들을 동원해 인근의 원당봉 등지에서 흙과 돌 등을 날라다 활주로 공사 등을 진행시켰다. 그러나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던 1945년 4월 제주도 주둔 제58군...

  • 동아 통항 조합의 자유 운항 운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30년 제주 주민들이 일본의 선임료 인상에 항의해 자주적으로 배를 운항한 항일 운동. 제주와 오사카 간에 직항로가 개설된 것은 1923년부터였다. 그런데 일본 기선 회사들은 1928년 갑자기 선임을 대폭 인상하였다. 그러자 1930년 4월 21일 김달준 등 제주 지역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해 동아 통항 조합을 결성하였고, 제주도민들의 지지 아래 자체 운항을 시작하였다. 1923년...

  • 제주 금융 조합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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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 제주 지역에서 일반 금융 및 농업 금융을 담당했던 기관. 금융 조합은 1907년(광무 11) 5월 30일 칙령 제23호로 제정·공포된 지방 금융 조합 규칙에 의거하여 조직된 지방 금융 조합이 기원이다. 일제 강점기 수탈 정책을 최전방위에서 담당할 기관으로서 설립되었다. 제주도에서는 1911년 6월 29일 광주 농공 은행 제주도 지점이 설치된 것이 일반 및 농업 금융의...

  • 제주도 어업 조합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36년 12월 제주도 내 8개 어업 조합들을 통합하여 설립된 수산 단체. 예로부터 수산업 종사자들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지연적, 또는 혈연적인 관계에 따라 상호 협동 조직인 계(契)라는 것을 조직하였다. 이러한 계 조직이 한일 합방 이후 어업 조합이라는 수산 단체를 설립하는 모체가 되었다. 한일 합방 이후 일본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수산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함...

  • 제주도 해녀 어업 조합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제주에 거주하고 있던 해녀, 사공을 조합원으로 하여 제주도 일원을 대상으로 업무를 수행하였던 수산 단체. 일제 강점기에 제주도 연안에 살고 있던 부녀자의 대부분은 연안 어장에서 어업에 종사하면서 생활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들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으로까지 출어하면서 제주도의 경제 발전 및 어민 생활 향상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해녀의 모집 및 감독 업무를...

  • 무수 주정 제주 공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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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 동양 척식 주식회사 제주 지사에서 제주항 근처에 건립하여 운영하였던 주정(酒精) 공장. 무수 주정 제주 공장은 1940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 제주 지사가 제주항 근처의 부지 약 4만 3685㎡에 약 7,580㎡ 규모로 착공하여 1943년 완공한 주정 제조 공장인데, 동양 척식 주식회사 제주 지사에서는 일본 전역에 주정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동양 제일의 시설 규모라고...

  • 조선 식산 은행 제주 지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18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장기 산업 자금의 조달 및 공급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된 금융 기관. 총독부령에 의해 1918년 10월 1일 ‘조선 식산 은행’의 설립으로 인해 광주 농공 은행이 같은 날짜로 해산함에 따라 광주 농공 은행 제주도 지점이 명칭을 변경하여 조선 식산 은행 제주 지점이 개설됐다. 8·15해방 이후 한국 식산 은행으로 바뀌어 한국 전쟁 때까지 장기...

  • 제주 전기 주식회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제주 지역에 설립되었던 전기 공급 회사. 제주의 일본인 거류 지역과 관공서를 대상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구 지역에 전기 사업을 벌이던 오쿠라는 전라남도 제주면이었던 작은 섬 제주도에 관심을 갖고 제주면 일원을 공급 구역으로 하는 제주 전기 주식회사의 설립을 인가받아 1924년 10월 23일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척박한 자연환경과 빈약한 경제력으...

  • 제주 통운 주식회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강점기 제주도 제주면 삼도리에 있었던 제주 지역 최초의 여객 자동차 회사. 제주 지역에 최초로 교통수단인 여객 자동차가 등장한 것은 1925년 2월이었으며, 이후 제주 동부 자동차 회사와 제주 통운 주식회사가 운영되고 있었다. 제주 동부 자동차 회사는 제주-성산포 간을 운행하였고 제주 통운 주식회사는 제주-모슬포와 한림 간을 운행한 데서 비롯되어 제주 동부 자동차 회사를 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