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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다시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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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마을. 17세기와 18세기 옛 지도에서 간다시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4~5세기에는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은 오늘날 민간에서 다시라 하고 병다동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 고지도에서 간다시 또는 간다시촌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원래 다시 또는 다시을이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14년 행...

  • 거마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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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2동에 있는 마을. 17세기 고지도에서 걸마로촌(乬馬路村)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유 음성형은 ‘걸〉걸르〉걸머리’로 실현되어 전하고, 한자 차용표기로는 거마로(巨馬路), 걸마로(乬馬路), 거마로(巨馬老), 걸마로(乬亇路) 등으로 표기하였다. 요즘은 ‘걸머리’ 또는 ‘금천마을’이라 하고...

  • 고놀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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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마을. 제주시 화북1동 서쪽 바닷가에 있는 자연 포구 이름이자 자연 마을이다. 이 마을은 제주4·3사건 때 폐동되었다. 고놀개라고 부르다가 소리가 고늘개로 바뀌면서 곤을개로 인식하여 곤을포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차자표기로 고로포로, 일제 강점기부터 곤을포가 되었으며, 마을 이름도 고로촌 또는 고로동으로 하다가 일제 강점기부터 다...

  • 구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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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마을. 원래 구오름 또는 구름이라 부르다가 한자 차용표기로 구호음(求乎音)으로 표기하였다. 구호름(求乎廩)으로도 표기하였다. 17세기 고지도에서 구호음촌(求乎音村)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구오름은 구호음 또는 구호름으로 표기하다가, 아라1동의 관할인 구산(龜山)이라 하고 있다. 마을의 서쪽...

  • 김녕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었던 포구. 김상헌(金尙憲)은 『남사록(南槎錄)』에서, 구좌읍 김녕리의 한개를 대포(大浦) 또는 김녕포(金寧浦)라고 하였다. 대포는 한개라는 포구 이름이다. 김녕포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 이름이다. 이증(李增)은 『남사일록(南槎日錄)』에서, 대포를 달리 김녕포라고도 하였다. 이는 그 당시 대포는 포구 이름, 김녕포는 김녕촌(金寧村)이라는...

  • 남수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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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지명. 산치천의 위에 만든 다리로 1599년(선조 32) 목사 성윤문이 북수구와 함께 이곳에 수구를 만들고 하상에는 홍예다리를 놓아 그 위에 초루를 세웠다. 남수각은 1652년(효종 3) 8월 태풍에 홍수로 무너져 버렸고 1720년 목사 이원진이 복구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봄에 준공을 보았다. 홍수 때마다 파괴 유실 축조가 반복되다가 언제부턴...

  • 다랏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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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에 있는 마을. 다라콧 또는 다라쿳은 월평동의 옛 이름이다. 17세기 고지도에서 별라화촌(別羅花村)[다라콧을, 다라쿳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라콧 일대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한자 차용표기로 별라화촌으로 표기하였는데, 조선 후기부터 월평리가 되었으며, 아라동 관할의 월평동이 되...

  • 도두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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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1동에 있었던 포구. 도두포, 즉 도원포(道圓浦)는 그 당시 도두촌(道頭村)(「탐라지도병서(耽羅地圖竝書)」)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것이다. 도도리는 ‘도도리’의 한자 차용의 표기이고, 도원(道圓)의 도(道)는 음을, 원(圓)은 뜻을 빌린 표기다. 지금의 제주시 도두1동의 옛 이름이 도두리(道頭里)다. 도두1동의 바다밭은 동쪽의 고냥굴에서부터 서쪽의 오니...

  • 동광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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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에 있는 마을. 광양이나 과양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넓은 땅이라는 데서 광양으로 표기하다가 광양으로 굳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예로부터 광양 또는 과양이라 부르고, 한자 차용표기로 광양(廣壤)으로 표기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광양(光陽)으로 표기하고, 동쪽 지역을 동광양, 동과양, 서쪽 지역을 서광양 또는 서과양이라고 한다. 민간에서는 음성형이 주로...

  • 매돈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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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련2동에 있는 마을. 매돈지는 돈지 또는 매돈지의 변음을 반영한 것으로, 제주시 도련2동의 옛 이름이다. 매돈지는 매돈지(每敦地) 또는 매돈지(每敦支) 등으로 표기하다가, 일제 강점기부터 매촌(梅村)으로 표기하였다. 매돈지는 맨돈지의 변음으로, 온전한 돈지(둔덕의 제주어)라는 뜻이다. 17세기 고지도에 매돈지촌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 먹돌새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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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에 있었던 마을. 먹돌새기 지경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가는 알 수 없지만 광복 후 다음해 여덟 가호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으며, 제주4·3사건 직후 연동, 노형, 해안동 등 각처에서 이주민들이 근처 밭을 임대하여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땅에 조그마한 먹돌(검은돌)이 많아서 그렇게 불렀고, 한편 늙은 소나무가 있었다 하여 먹돌송이라 불리던 것이 와...

  • 명도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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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마을. 예로부터 ‘멩도암>명도암’이라 불렀다. ‘멩도암’은 한자차용표기로 明道岩(명도암) 또는 明道菴(명도암) 등으로 표기했다. 이곳에 있는 오롬을 明道岳 또는 明道岩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원래 ‘명도암’은 오롬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예로부터 명도암 또는 명도암오름으로 부르는 오름과 명도암물로 부르는 물 일대에 사람들이 들어...

  • 무근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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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었던 성터. 제주목 관아지 서북쪽에 위치해 있는 옛 읍성으로, 탐라국 시대에 고(高), 문(文), 강(康)의 세 성씨의 부호가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무근성의 동쪽은 대부호 강만호 집, 서쪽은 고만호 집의 주위 부근을 무근성 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들이 살던 집터는 거의 원형을 잃고 사람들도 흩어져 있어 무근성에 대한 내력을 알기가 어렵다....

  • 무드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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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강동에 있는 마을. 제주시 용강동은 웃무드내라 하고 영평하동은 알무드내라고 하여 무드내는 용강동과 영평하동에 걸치는 내 일대를 이르는 마을이다. 제주시 용강동과 영평하동을 지나는 내 이름인데, 이 일대에 형성된 마을의 이름으로 발전하였다. 무드내를 한자 차용표기로 무등천으로 표기하였다. 17세기 고지도에서 무등촌(無等川村: 무드내을)으로 표기한 마을을 확...

  • 무주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있었던 포구. 무주포는 지금의 구좌읍 월정리에 있는 배롱개, 그리고 배롱개가 거느리고 있는 물개와 새물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는 무주촌(無注村) 앞에 무주포(無注浦)가 있다고 하였다. 무주포는 당시 무주촌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취한 포구 이름이다. 즉, 무주포는 무주촌에 있는 포구라는 말이다. 지금의 구좌읍 월정리의...

  • 벨방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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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있었던 별방진(別防鎭)의 포구. 별방진은 한개창 이라는 포구를 거느리고 있었다. 김상헌(金尙憲)은 『남사록(南槎錄)』에서 한개창을 두고 대포(大浦)라고 하면서 병선(兵船)도 감출 수 있다고 하였다. 대포(大浦)는 ‘한개’의 한자 차용의 표기다.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에는 별방촌(別防村) 아래 별방진을, 그리고 그 앞에 별방포(別防浦)가 있...

  • 변막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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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 있었던 포구. 변막포(邊幕浦)는 조선 후기 변막촌(邊幕村)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딴 포구의 이름이다. 변막포는 지금의 구좌읍 동복리에 있는 펄개를 두고 이른 말이다. 지금 이 마을은 새성창과 펄개라는 두 개의 포구를 거느리고 있다. 새성창은 새로 만든 ‘성창’ 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 마을의 옛 포구는 ‘펄개’ 뿐이었던 셈이다. ‘펄개’는 ‘...

  • 별도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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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었던 포구.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금돈지와 엉물머릿개를 두고 이른 말이다. 화북포(禾北浦)는 화북촌(禾北村)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화북촌(禾北村)의 포구는 연디밋코지와 남당머리콪 사이 후미진 곳에 있다.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는 ‘지방여’ 와 ‘여’는 어느 정도 북풍을 막아 준다. 그 안에 두 개의 포구가 있다. 서쪽의 것을 ‘...

  • 부러리(伐浪浦)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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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마을. 지형이 달과 비슷한 형국 또는 달이 뜨는 모습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과 또는 달이 뜨는 모습이 잘 보일 만큼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향교 북쪽에 동~서로 난 옛날의 구 한질을 이르는 동네로서 제주성의 서문 밖에 부러릿질 서쪽 길가와 개물동산 남쪽의 비석거리를 말한다. 또는, 동북쪽 방향의 골목길은 구린질과 교차하면서 무...

  • 북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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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있었던 포구. 북포는 지금의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큰성창’을 두고 이른 말이다. 북포는 그 당시 북포촌(北浦村)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딴 포구이다.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는 북포촌 앞에 북포(北浦)가 있다고 하였다. 민간에서는 지금의 조천읍 북촌리의 북포촌을 두고 ‘뒷개’라고 이른다. 북포와 북질포(北叱浦)는 ‘뒷개’의 한자 차용의 표기다...

  • 산천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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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제단. 한라산에서 사람이 동상이 걸리거나 사고로 죽는 사람이 발생하므로 제단을 만들고 산천(山川)에 제를 지내던 곳이다. 18세기 중 후반의『증보 탐라지』에 “소림사(小林祠)는 한라산신(漢拏山神)을 제사하는 곳이다. 이 사(祠)는 한라산 아래인, 제주목 남쪽 16리에 있었다. ……. 처음에는 백록담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겨울에 만약 눈이 심하...

  • 삼의양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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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일대에 위치한 봉우리.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표고 574.3m, 비고 139m, 둘레 2,473m, 면적 412,000㎡, 저경 725m의 오름이다. 오름 정상 분화구에 샘이 솟아나와 세미오름이라 부르던 것이 지금은 한자의 음을 빌어 표기한 삼의양악(三義讓岳), 삼의악(三義岳)으로 불려지고 있다. 세미양오름, 새미양오름의(三義)의 현대 한자음은 ‘삼...

  • 서광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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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마을. 조선시대에 광양(廣壤)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원래는 ‘넙은 땅(넓은 땅)’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간에서는 광양 또는 과양으로 전하면서 일제 강점기부터 광양으로 쓰였다. 동쪽 지역을 동광양이라 하고 서쪽 지역을 서광양이라 한다. 제주시 제주 삼성혈 아래쪽 지역을 광양이라 하고, 조선시대부터 광양당(廣壤堂)이 있...

  • 서사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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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마을. 잡석이 많은 들판으로 자갈이 많은 땅을 뜻한다. 토양에 잡석이 섞여 땅이 비옥하고 농사도 잘되어 서녘서, 물가사 혹은 모레사, 비단라자를 써서 서사라(西沙羅)라고 하였다. 풍수적인 지명으로 세사라(細巳羅)라고도 한다. 서사라 내에 특이한 지명으로 냇가에서 두꺼비가 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두꺼비왓이란 곳이 있고, 지금의 농협 도지부가...

  • 세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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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회천동에 있는 마을. 17세기 고지도에서 천미촌(泉味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에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미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천미촌 또는 천미리라 하다가, 19세기에 이웃한 세미을 세은쇄리와 통합하여 세천리라 하다가 20세기 초부터 다시 회천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5년 시가 되면서 봉개동의 관할...

  • 소흘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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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에 있었던 포구. 소흘포는 지금의 제주시 삼양1동에 있는 ‘동카름성창’을 두고 이른 말이다. 원당포(元堂浦)는 지금의 제주시 삼양동에 있었던 포구로, 원당포를 두고 옛 문헌은 소흘포(所訖浦)라고도 하였다. 소흘포는 당시 소흘촌(所訖村)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이다.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에는 원당봉(元堂烽) 동쪽에 소흘촌이 있고, 그 앞에 소흘...

  • 신촌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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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있었던 포구. 신천포는 지금의 조천읍 신촌리에 있는 ‘큰물성창’을 두고 이른 말이다. 신천포는 그 당시 신촌(新村)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신촌은 돌코지성창과 큰물성창이라는 두 개의 포구를 거느리고 있다. 포구의 규모나 입지 조건으로 미루어 보면, 신촌포는 큰물성창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포구 안에 ‘큰물’이라는 우물이 있어...

  • 아라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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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마을. 아라호는 한자 차용표기에 따라 아라호로 표기하였다. 아라호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민간에서는 아라위로 불린다. 17세기 고지도에서 아라호촌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아라호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아라호촌이라 하였는데, 18세기에는 아라호리라 하고, 19세기에는 아라리라 하였다....

  • 어등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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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있었던 포구. 어등포는 지금의 구좌읍 행원리에 있는 ‘한갯목’과 그 주변을 두고 이른 말이다. 어등포는 조선 후기에 어등포리에 있었던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구좌읍 행원리를 두고 어등개라고 한다. 그렇다고 행원리의 마을에 어등개라는 포구나 지명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등개는 바로 포구 이름이 아닌 마을 이름이기...

  • 몰래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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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2동에 1979년까지 있었던 마을. 1702년(숙종 28)에 만든 「한라장촉」에는 니을포(泥乙浦)라 기록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300년 이전에 마을이 형성 되었던 곳이다. 북서 계절풍을 제외하면 바람이 많은 지역은 아니었으며, 좋은 경작지가 있던 곳으로 보아 농사가 잘 되는 곳이었다. 완만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 바닷가 마을로 반농반어를 생계 수단으로...

  • 오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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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마을. 오드싱이오름 아래가 되므로 마을 이름이 오두싱이, 오디싱이가 되었다. 오드싱이오름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싕이라 하고 한자 차용표기로 오등생촌(五等生村·吾等生村) 또는 오등생리(五等生里·吾等生里) 등으로 표기하였다. 1914년에 오등리가 되었다가 1955년에 시가 되면서 오등동의 관할이 되었다. 지형은 그리 높지 않으며, 마을 가운데를...

  • 와호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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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봉우리. 이 오름은 예로부터 누온메, 누온미, 눈메 또는 눈미라 하다가 한자 차용표기로 와호산(臥乎山) 또는 와산(臥山)으로 표기하였다. 일부에서는 와호산을 와호산(臥虎山) 한자명을 쓰고 ‘누운 호랑이 같은 산’이라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 오름이 나직하게 누워있다는 데서 붙인 것이다. 등성이에는 대체로 풀밭을 이루고 있으며...

  • 왜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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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에 있었던 포구. 왜포는 지금의 조천읍 신흥리에 있는 쉐물깍과 그 주변을 두고 이른 말이다. 왜포는 그 당시 왜포촌(倭浦村)이라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왜포촌은 지금 엉알개라는 하나의 포구만 거느리고 있다. 그것은 오래지 않은 때에 만들어졌다. 원래는 ‘쉐물깍’을 포구로 이용하였다. 이렇게 깊고 넓게 후미진 곳에 포구가 있었지만, 김...

  • 월두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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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2동에 있는 마을. 마을의 지형이 달머리 같다는 데서 월두동(月頭洞)이라 하였다고 하나, 원두왓의 원두의 뜻은 확실하지 않다. 17세기에 걸머리(아라2동 금천마을)에 살던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원두왓이라 불러왔던 것을 고려하면 전자는 한자 표기를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주변의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 있다. 마을의 서쪽으로 흐르는...

  • 인화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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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마을. 1955년 8월 13일 시제(市制) 실시에 따라 일도리 일부인 신산루, 운주당골, 새나끗, 내팟굴을 갈라서 일도2동에 편입하였다. 지금은 운주당골이나 내팟굴은 일도1동에 속하고, 흰머들의 사구왓, 루왓, 강알왓 등은 건입동에 속하다가 일도2동에 편입되었다. 다시 인제아파트 부근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어 신천지아파트가 있는 새나끗까지...

  • 정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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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에 있는 마을. 이 마을은 ‘도미을’의 변음으로, 도를 넘는 마을이라는 데서 붙인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고지도에 도내산리(道內山里)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도노미을이라 부르고 도내산리로 표기하였다. 도노미을은 ‘도미을’의 변음으로, ‘도’를 넘는 마을이라는 데서...

  • 제주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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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과거 행정 구역. 제주시의 과거 행정구역으로 1931년 제주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어 1955년 제주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존속되었다. 본래 구한(九韓)의 하나로 탁라(乇羅), 또는 탐라(耽羅)·탐모라(耽毛羅) 등으로 불리었다. 고대 탐라국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 1105년(숙종 10) 탁라를 고쳐 탐라군(耽羅郡)으로 하였다. 이후 1295년에 제주(濟州)로 이름...

  • 탑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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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북쪽 해안지역. 제주시 탑동의 북쪽 해안은 수심이 1m~3.5m 정도이며, 공유 수면이 제1종 공동어장에 해당하며, 간조 때 마을 주민들이 해산물을 채취하고 수영을 즐기던 곳이었다. 이곳은 탑알, 또는 탑 아래라고도 하며, 무근성의 북쪽 바닷가 마을을 지칭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인가는 없고 대부분이 밭으로 되어 있었다. 무근성에서 청상과부가...

  • 함덕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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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었던 포구. 함덕포는 그 당시 함덕리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이 포구를 두고 김상헌(金尙憲)의 『남사록(南槎錄)』과 이형상(李衡祥)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서는 함덕포(咸德浦), 그리고 「제주삼읍도총지도」에서는 강림포(江臨浦)라고 하였다. 강림포는 강녕개의 한자어다. 지금 조천읍 함덕리 2구에는 강녕개와 당뒤성창이라는...

  • 황사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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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2동에 있는 마을. 원래 황새왓 또는 황수왓으로 부르던 곳으로, 황새왓을 한자 차용표기로 황사평으로 표기하면서 오늘날까지 부르고 있다. 황새왓은 황새가 나는 밭이라는 데서 붙인 것으로 보인다. 「제주지도」에서는 ‘황지평(黃地坪)’과 김윤식의 『속음청사(續陰晴史)』에서도 황사평(黃沙坪)으로 각각 표기하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 때 발행한 지도에는 황사평(黃莎...

  • 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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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회천동에 있는 마을. 세는 는세 또는 세미(가는 샘)의 변음으로, 회천동의 동회천에 있는 샘의 이름이었다. 이 샘 일대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한자 차용표기로 세은쇄촌으로 표기하였다. 오늘날은 회천동의 서회천이라 하고 있다. 17세기 고지도에 세은쇄촌(細隱刷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