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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만 할아버지의 일상생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T03010
한자 -日常生活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집필자 김미진

내가 살 집 짓기

1959년 3월 20일에 결혼하고 3월 22일에 할아버지 제사, 또 23일은 지금 살고 있는 집터 집 지으려고 토신제를 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한 일 년 동안 집을 지었는데 목수는 처남이 일꾼은 그가 둘이서 집을 다 지었다. 밥 힘으로 일을 한다고들 하는데 그와 그의 처남은 술 힘으로 집을 지었다고 했다. 어찌나 술을 잘 먹었던지 술 열 넉 되 들어가는 그 술독에 술을 두 사람이 이틀이면 다 먹었다. 31평 기와집으로 그 때 당시 이 동네에서 가장 좋은 집이었다고 회상했다.

기와 사오기

처음 슬라브집을 지으려고 설계를 해왔는데 아버지가 슬라브는 서양놈이나 짓는 거라며 지붕 있는 집에서 살아야 된다고 해서 기와집으로 짓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 당시 기와공장은 지금 시청 앞, 대정읍 무릉 2리 정도가 있었는데 가장 좋은 기와로 하고 싶어서 알아보았더니 경남 양산읍 소토에 기와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제주항에서 배를 타고 기와를 사러 경남에 까지 갔었다. 현금으로 가져가기가 그래서 부산 조흥은행에 가서 돈을 맡겨두고 보증수표로 바꿔 기와를 사러 갔는데 기와 공장 주인인 서 영감이 돈을 줘야지 왜 종이 쪽지를 주느냐고 해서 아무리 설득을 해도 소용이 없어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5·16이 터져 은행에서는 하루에 만원 밖에 찾을 수 없었고 통행금지에 걸려 오도 가도 못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기와를 사고 부산에서 출발하여 제주로 오는데 고생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동부두에서 헌병들이 기와를 내리지 못하게 하였다. 높은 사람에게 사정하여 겨우 기와를 내리고 집을 지었다. 지금 동초등학교 뒷길이 마차 하나 지나가면 사람도 비켜야 하는 작은 길이었는데 마차로 기와를 나르면서 집을 지었다.

집의 구조

1960년 초에 지은 집은 남향집으로 총 건평이 31평으로 꾀 큰 규모의 집이었다. 집 왼편으로 방 두 개 안방과 아이들 방이고 오른 편으로 아버지 어머니 방 두 개와 부엌이 있었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집의 구조와 비슷하다고 했다. 지금 고봉만의 집은 남향으로 오른 쪽에는 고봉만의 방과 작은방 부엌이 있고 왼쪽으로는 안방과 욕실, 방이 하나 있고 거실 뒤편으로 중앙에 제사방이 있다. 왼쪽에 안방과 욕실 사이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2층에는 작은 아들 내외와 손자둘이 살고 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바깥으로 따로 나 있기는 하지만 주로 1층으로 출입한다.

시장보기와 일상 음식

고봉만의 집 마당에는 여러 가지 채소들이 있는데 과일은 사다먹지만 채소는 전부 집에서 길러서 먹는 편이다. 미나리를 비롯해서 상추 등 집 마당에 채소를 뜯어 먹는데 보통 식사 때는 집에서 키운 채소에 쌈을 싸서 먹는다. 대나무 죽순이 나면 반찬도 해먹는다고 했다. 고봉만은 고등어 구운 것을 상당히 좋아한다면서 구운 고등어는 앉은 자리에서 두 마리도 먹는데 전순자는 너무 많이 먹는다고 구박을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인삼이다 보약이다 하고 몸을 챙기는데 고봉만은 아직까지 보약이라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들에서 나는 풀과 고등어 반찬이 최고라고 했다. 고봉만은 주로 싱싱한 바닷고기는 수협 어판장에 가서 사고 동문시장에 갈 때도 있다. 육고기 살 때는 단골집이 있는데 동교 앞 골목으로 200미터 정도 가면 있는 푸른 식육점을 이용한다. 고향이 사계리라는 젊은 친구인데 가면 잘해준다고 그 식육점만 이용한다고 했다.

도시락 반찬

전순자의 어머니는 음식솜씨가 좋았었는데 특히 전북 순창 출신이라 고추장을 맛있게 잘 담갔다. 전순자가 초등학교 시절 도시락에 고추장을 싸가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고봉만이 방선문 근처에서 나무 심는데 감독을 할 때 전순자의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이 기억이 난다고 했는데 계란후라이에 보리밥이 고작이었는데 그 때는 계란후라이가 아주 좋은 반찬에 속한다고 했다.

명절 음식

고봉만은 반달모양의 송편들도 가끔 눈에 띄는데 사실 제주도 송편은 동그란 모양이라고 했다. 문헌적으로 고증하지는 못하겠지만 추석은 대보름으로 달이 동그랗고 크게 뜨므로 추석 때 먹는 송편은 동그랗게 만드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떡은 시루떡, 좁쌀떡, 오메기떡 등을 하는데 예전에는 다들 집에서 시루에 떡을 찌고, 송편을 빚고 솔잎 놓고 만들었지만 이제는 모두 떡집에 맡겨서 한다.

적은 돼지고기, 소고기, 상어고기를 했는데 전순자는 상어고기가 맛도 없고 만들기도 귀찮아서 오징어적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바닷고기로 옥돔을 통째로 구워서 하는데 예전 시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우럭으로 했었는데 그러다가 중간에 옥돔으로 바꿨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다시 우럭이 좋아서 우럭으로도 하는데 몇 번이나 우럭 사러 동문시장에 갔는데 우럭이 작은 거 밖에 없어서 지난 추석 때도 그냥 옥돔으로 했다고 했다.

국은 소고기국도 끊이고 생선국도 끊이는데 옥돔이나 큰 돔으로 끓이는 것이 보통이다. 국을 끓일 때는 무를 넣는다고 했다. 과일은 5종류 아니면 7종류로 올린다고 한다. 보통 사과, 배, 귤, 감을 올리고 나머지는 계절에 따라 나온 과일 중에서 선택하여 올린다. 예전에는 사람들은 많고 음식은 적고 해서 고구마 튀김이나 오징어 튀김을 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으나 요즘은 사람도 안 오고 해서 튀김은 거의 안한다고 했다.

노래·놀이

전순자는 어렸을 때 친구가 만들어준 오메기떡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라 마땅히 군것질 거리가 없었는데 한번은 친구네 집에 갔는데 친구가 직접 만들어준 오메기 떡을 같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2006년 9월 제주동초등학교 5회 동창회가 있었는데 동창회에서 그 친구를 만나 그 오메기 떡 이야기를 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또 그녀가 어렸을 때 했던 놀이로는 고무줄, 땅따먹기, 공기 등이 있는데 고무줄놀이를 잘했었고 땅 따먹기도 잘하고 놀 때는 다른 사람에게 지지 않았다고 한다.

명절-추석

전순자는 어렸을 때 추석이 되면 놀러 갈 데가 없으니까 어른들이 사라봉에 가서 춤추고 놀고 야유회 비슷한 것을 하곤 했었다고 기억했다. 8월 추석 명절날은 시장에서 사탕을 많이 사다가 사라봉에 모인 사람들에게 팔고, 또 엿도 사다가 팔고 했었다. 엿은 산지천 내 바깥쪽에 엿 장사들이 있었는데 거기 가서 엿 떼어다가(도매로 사다가) 낱개로 팔면 이익이 남았다. 요즘에는 무슨 행사를 한다고 하면 포장마차가 줄을 잇지만 옛날에는 장사꾼이 별로 없어서 사탕이나 엿이 잘 팔렸다고 한다. 또한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을 것이라고 하면서 술을 사다가 판 일도 기억했다. 어떤 아저씨가 술을 밑에서 사 오면 돈을 많이 벌수 있다고 해서 동문 로타리의 시장에 가서 술을 도매상에 가서 사고 등에 져서 사라봉을 올라가서 팔았었다. 술을 등에 져서 올라 가 팔면 돈이 남고, 다 먹은 병을 다시 수거하여 그것을 다시 등에 지고 와서 병을 팔고 했었다고 한다.

세배

고봉만의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세배하러 오던 모습을 기억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정직한 분으로 소문이 났으므로 정월 초부터 시작된 세배는 그 때 못 온 사람들은 늦게 집을 찾아오는데 3월 보름까지도 세배하러 오는 손님이 있었다고 했다. 세배 오는 손님에게는 으레 술을 대접했었다. 그의 집에서 직접 술을 담갔었다고 한다. 고봉만의 집에서 직접 담근 술 맛이 좋아서 한번 맛을 본 사람은 맛있다고 다시 찾았다. 어느 병원장이라는 사람은 주전자도 작은 게 아니고 큰 것을 아들에게 보내어 ‘봉만이 삼촌신디 강 막걸리 이걸로 하나만 줍센 빌어오라(봉만이 삼촌에게 가서 막걸리 이것으로 하나만 주라고 해서 빌어와라)’ 해서 오면 안 내줄 수도 없고 해서 술을 주곤 했었다고 한다. 매년 정초에 손님 맞은 것도 동네사람도 오고 멀리서도 오고 오지 말랜 할 수도 없고 오면 다른 집에도 노인이 있는데 매집 가는 게 아닌데 오래 걸려도 그의 아버지를 찾아오니까 감사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백세 넘게 사셔서 최근까지 세배손님이 많이 왔었는데 200명 이상의 손님이 다녀갔다고, 전순자는 말했다. 집에서 담은 막걸리에 빙떡이나 찰떡 구운 것을 손님상에 내놓았다고 한다. 고봉만의 딸들은 명절 때 심부름만 하여 놀러도 못 갔는데 세배손님 뒤치다꺼리에 한 달 내내 바쁘다고 잔소리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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