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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지도 및 지도병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430
한자 耽羅地圖-地圖竝書
영어음역 Tamna Jido mit Jido Byeongseo
영어의미역 Map of Tamna with Note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동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도
제작시기/일시 1709년연표보기
재질 한지
소장처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문화재 지정번호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13호
문화재 지정일 1991년 6월 4일연표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숙종 때 제작된 제주도 지도와 그 서문.

[개설]

1709년(숙종 35)에 제주목사 이규성(李奎成)이 제작한 지도 1과 병서 2로 이루어진 지도로, 세로 125㎝, 가로 98㎝의 크기이다. 현존하는 조선 시대의 제주 지도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어 1991년 6월 4일 제주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도의 서문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끝부분에 “강희기축정월이등개간(康熙己丑正月李等開刊)”이라고 적혀 있어 제작 연대와 제작자의 추정이 가능하다. 즉 제작 연대를 말하는 ‘강희기축정월(康熙己丑正月)’은 1709년(숙종 35) 정월이며, 제작자를 말하는 ‘이등(李等)’의 ‘이(李)’는 당시 제주목사의 성(姓)을 의미한다.

현전(現傳)하는 『관풍안(觀風案)』이나 『선생안(先生案)』에 의하면, 이 시기에 제주목사를 역임한 사람은 이규성(李奎成)이다. 이규성은 1707년(숙종 32) 9월에 부임하고 1709년(숙종 35) 5월에 이임하였으므로, 이 지도는 그가 이임하기 4개월 전인 정월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형태]

도면 전체를 3단으로 나누어 상단과 하단에는 제주도의 지리적 상황을 기록하고, 가운데에 지도를 그려놓았다. 지도는 본토 쪽에서 제주도를 바라보았다고 가정하여 그린 것으로, 제주도의 남쪽이 지도의 상부에 위치하여 있고, 주변에 24방위를 표시하였다.

주요한 오름은 거의 다 표기하였고, 산 모양의 음각으로 오름의 이름을 적고 있으며, 포구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주변의 바다를 파도 무늬로 표시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은 조선 전기의 표현법을 이은 것이다. 서문은 간략하고 일목요연하게 상단과 하단에 잘 정리되어 있다.

[특징]

지도의 서문에 따르면, 제주도는 동서 길이 56㎞, 남북 길이 28㎞이고, 목장은 제주목 7개소, 정의현 3개소, 대정현 3개소 등 13곳이다. 또한 봉수 25곳, 연대 38곳, 과원 40곳, 방호소 9개소, 촌점 150곳(제주목 102곳, 정의현 35곳, 대정현 13곳)이다.

한편 호구는 8,955호(제주 6,991호, 정의 1,449호, 대정 815호)이고, 총 인구는 4만 5,129명(제주 3만 3,585명, 정의 7,459명, 대정 4,085명)이다.

이 지도는 서두에 “제주는 본시 구한(九韓)의 하나로 혹은 탁라라고 일컬었고, 혹은 탐라라 하였고, 혹은 탐모라, 혹은 동영주(東瀛州)라 일컬었다.”라고 한 뒤 섬의 둘레, 목장, 봉수 및 연대의 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과원, 제주목에 대한 언급과 함께 정의, 대정의 호수와 인구, 관원 수, 제주목사 도임시의 진상 특산물의 종류와 수량, 삼읍의 행정 구역에 대해 기록했다. 제주성의 삼문(동·서·남)과 성내의 관덕정을 비롯해 귤림당, 홍화각 등의 고건조물(古建造物)과 삼성혈 등의 고적에 대한 소개도 있다.

한편 “토인(土人)은 많이 우마를 먹여 키움으로써 그 생계의 자원으로 삼는다.”고 하여 밭담을 쌓아 밭의 경계를 삼는 풍속 등 제주인의 생활상을 표현하고 있다. 한라산은 은하를 끌어당길 만한 산이라고 표현하고, 영주산(瀛州山)·원산(元山)·삼신산(三神山) 등의 명칭과 백록담, 구상나무 등의 풍치(風致)에 대한 기록도 보인다.

[의의와 평가]

탐라지도와 그 병서는 지도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큰 자료이지만, 지명과 고적, 풍속 등 당시의 여러 사항을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학술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