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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525
한자 烽燧
영어음역 bongsu
영어의미역 beacon fire stati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동전

[정의]

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관에서 변경의 정세를 중앙에 전하던 군사통신 조직.

[개설]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烽:횃불), 낮에는 수(燧: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통신 방법이다.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 봉수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록상에 나타난 시기는 고려 중기(12~13세기)이다. 그러나 서로 바라볼 수 있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횃불과 연기로 의사를 전달하던 지혜는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변천]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의 치세 중에 봉화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시대에도 봉화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봉화가 처음으로 법제화된 것은 고려 중기로 보아야 한다.

고려시대의 봉수제는 삼국시대보다 월등히 발전하였는데, 봉수제는 정식 법으로 제정하여 실시하였다. 고려 때인 1149년(의종 3)에 봉수의 거화수를 규정하고, 봉군에게 생활 대책을 마련해주었고 감독 책임자까지 배치한 사실이 서북면병마사 조진약이 임금에게 올린 글에서 나타난다.

그 후 봉수제는 조선 세종 때에 이르러 종래에 계승되어온 고려의 봉수제를 바탕으로 하고,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도입하여 거화거수(擧火炬數) 등 관계 규정을 새로 정하였다.

이에 따라 제도연변의 각 연대를 새로 축조하고 나아가 봉수선로를 일제히 확정하는 등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특히 봉수의 거화법은 고려 시대 4거법에서 무사시 1거로부터 적과 접전 때 5거에 이르는 5거법으로 변경되었다.

제주도에서 봉수가 설치된 것은 조선시대 세종 때의 일이다. 당시 제주도안무사 한승순이 조정에 보고한 내용에 의하면, ‘봉화 후망은 22개소이고, 봉군은 봉화마다 5명이며, 연대의 규모는 높이와 너비가 각 10척’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이 시기에는 이미 도내 봉수 체제가 어느 정도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1702년(숙종 28)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남환박물』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사면을 둘러가며 봉수와 연대가 63곳이 있다. 각각 별장, 망한과 봉군을 두어 밤낮으로 지킨다. 동서로 연락하며 영문에 도달하게 한다. 평상 때는 1개, 황당선이 나타나면 2개, 지경에 가까이 오면 3개, 지경을 범하면 4개, 접전하게 되면 5개를 올린다. 밤에는 봉화를 하고, 낮에는 연기로 하는데 감히 어기거나 오류가 없다. 만약 구름 안개로 어두운 때는 구전(口傳)으로 서로 알린다.”

위 내용으로 보면, 도내 봉수·연대는 63개소였다. 이 봉수·연대는 1895년 봉수제가 폐지될 때까지 때에 따라 위치와 개수의 차이는 있었으나, 오랜 기간 군사적인 통신망의 기능을 하였다.

[요원]

봉수에는 별장과 봉군이 있었으나 시대에 따라 인원수에는 증감이 있었다. 그리고 봉수 요원은 근처에 사는 백성으로 배치하여 한 번에 별장 2명과 봉군 4명 내지 12명으로 조직하여 3교대로 수직하였다. 따라서 봉군에게 다른 군역은 부과하지 않았다.

[기능과 시설]

도내의 봉수대는 크게 오름 정상부에 설치된 봉수와 해안 구릉에 설치된 연대로 나눌 수 있다. 봉수대는 20㎞ 밖을 감시하는 기능을 하였다. 예를 들면 해상에 이양선이 나타난 것은 봉수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봉수는 일반적인 경우 석축함이 없이 둥글게 흙을 쌓아 올려 그 위에 봉덕 시설을 하였고, 밑에는 이중의 배수시설로 도량을 만들었다. 그러나 제주특별자치도 남제주군 안덕면 이두봉 감산리에 있는 호산 봉수는 지대가 평지인 까닭에 타원형으로 석축하여 그 속에 봉덕을 시설한 예도 있다. 그리고 봉수 주변 100보 내에는 봉화의 오인을 막기 위해 무당이나 통속적인 잡신제를 일체 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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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봉수·연대 현황 및 응소관계

[현황]

봉수는 1800년대 『제주병제급상읍봉수연대병졸총록』에 의하면 도내에는 봉수가 25개소 있다. 25기의 봉수는 현재 원형대로 남아 있는 것이 단 1기도 없다. 그래서 문화재로 지정받을 봉수가 전무한 실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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