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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989
한자 濟州牧官衙
영어음역 Jeju-mok Gwana
영어의미역 Jeju-mok Offic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3[관덕로 25]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동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관아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 전기
지정면적 19,533㎡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3[관덕로 25]
소유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380호
문화재 지정일 1993년 3월 31일연표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시대 제주목 관아.

[개설]

제주목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 지방 통치의 중심지로서,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들어서 있던 관아 시설을 말한다. 1991년부터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탐라국으로부터 조선과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기의 유구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관아 시설인 동헌과 내아의 건물지 등이 확인되어 제주목 관아지로 밝혀진 중요한 유적이다.

관아 시설은 일제강점기 때 집중적으로 훼철되어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나, 2002년 12월 1단계 복원을 완료하고 현재 2단계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변천]

제주목 관아지는 탐라국 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 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아 시설은 1434년(세종 16) 관부의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진 뒤 안무사 최해산이 바로 역사(役事)를 시작하여 그 다음 해인 1435년에 골격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내내 중축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고득종이 쓴 『홍화각기(弘化閣記)』는 바로 그간의 경위를 밝히기 위해 쓴 것으로, 여기에 따르면 당시 제주목의 관아 시설은 총 58동 206칸 규모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관덕정을 빼고는 집중적으로 훼철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나, 1991년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 과정에서 초석과 기단석 등이 확인되었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하고,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탐라방영총람(耽羅防營總覽)』 등 당대의 문헌 및 중앙문화재위원과 향토 사학가, 전문가 등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관아지 복원 기본 설계를 완료, 2002년 12월에 1단계 복원 완료에 이어 2단계 복원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91년 10~12월과, 1992년 5~12월의 2차에 걸친 제주대학교 조사단의 발굴조사 결과 제주목 관아지에서는 탐라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여러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관아의 주요 시설인 동헌과 내아의 건물터와 규모가 확인됨으로써 이 곳이 고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한 중요한 유적지였음이 밝혀져, 제주목 관아지 남서쪽에 있는 관덕정을 포함하여 사적 제380호로 지정되었다.

[현황]

1단계 복원 사업으로 제주목사의 집무실이었던 ‘홍화각’을 비롯해 집정실인 ‘연희각’, 연회장으로 쓰였던 ‘우연당’과 ‘귤림당’ 등의 관청 건물과 부대 시설이 복원되었으며, 2단계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2006년 2월 2층 누각인 ‘망경루’의 복원이 완료되었다.

[의의와 평가]

제주 역사의 정체성과 중심을 설정하는 뜻깊은 복원 사업에 제주 시민의 자발적인 동참이 이어지는 등, 제주목 관아는 제주도민의 혼이 담긴 귀중한 역사 유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