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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382
한자 瀛洲館-
영어음역 Yeongjugwanteo
영어의미역 Yeongjugwan House Sit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17-3[중앙로8길 18]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동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객사 대청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 전기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17-3[중앙로8길 18]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제주목 관아 안에 있던 조선 시대 객사 대청 터.

[개설]

영주관은 조선 시대 제주목에서 객사 대청으로 사용하던 건물이었다. 객관이라고도 불렀던 객사 대청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와 궐패(闕牌)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다.

예부터 객관은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전주 객사’처럼 특별한 곳은 임금이 직접 쓴 편액을 내리기도 하였다. 영주관은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제주목의 다른 많은 관아 건물들과 함께 파괴되었다.

[변천]

영주관이 정확하게 언제 지어졌는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조선 시대 지방에 세워진 객사들로 미루어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영주관은 수차례 복원을 거듭했는데, 1689년(숙종 15) 제주 목사 이우항이 개건하고, 1706년(숙종 32) 제주 목사 이규성의 중수를 거쳐, 1803년(순조 3)에는 판관 조경원이 중수하였다.

1907년(융희 원년) 윤원구 제주 군수가 영주관 자리에 제주 관립 보통학교를 세웠는데, 이후 제주 공립 심상소학교와 제주 북 공립 국민학교를 거쳐 현재는 제주 북 초등학교로 학교명이 변경되었다.

[현황]

1900년대까지 영주관의 모습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전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제주목 관아의 건물들과 함께 영주관도 복원하여 조선 시대 지방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기능했던 옛 모습을 살리는 방안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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