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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502
한자 老衡洞廣坪堂
영어음역 Nohyeong-dong Gwangpyeogdang
영어의미역 Gwangpyeongdang Shrine in Nohyeon-dong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광평마을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현용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본향당
건립시기/연도 조선 중기
관련인물 현치적(玄致績)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광평마을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광평마을에 있는 본향당.

[개설]

노형동 광평당의 주신(主神)은 오도롱(제주시 이호2동)에서 가지 갈라 온 송씨 할머님이다. 그 밑으로 산육신(産育神)인 불법 할마님과 마마신인 마누라님, 농신(農神)인 세경, 피부병신인 젯도가 모셔져 있다. 주신인 송씨 할마님은 동네 사람들의 생산과 물고, 호적, 장적을 차지하여 수호해 주는 토지관이다.

마을 사람들은 정월부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메 4기와 돌레떡, 해어(海魚), 채류(菜類), 과실류 등을 제물로 바치고 집안의 행운을 빈다.

[건립경위]

350여 년 전만 해도 제주시 노형동 광평마을은 나무와 억새로 뒤덮인 황무지였다. 어느 날, 현치적(玄致績)이라는 사람이 그 황무지에 들어가 억새밭을 갈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며 살기 시작했다. 생활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마음씨가 바르고 고왔다.

아래쪽 마을 오도롱(이호동)에는 풍수지리로 유명한 고전적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현씨는 은근히 고전적을 존경해서 꿩을 두 마리 잡으면 한 마리는 꼭 갖다 주곤 했다. 고전적은 마음씨 착한 현씨가 가난하게 사는 것이 측은하여 집터를 하나 봐주었는데, 자리가 좋은지 집을 짓고 살면서부터 현씨의 살림은 차차 풀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현씨가 살던 곳 근처로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와서 어느 사이 작은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소를 몰고 들판으로 나가던 현씨는 마을 어귀에서 힘없이 걸어오는 한 여인과 마주쳤다. 마음씨 고운 현씨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왜 그러냐?’고 물어 보니까 배가 너무 고파서 말할 힘도 없다고 대답한다.

“여기 조금만 앉아 계십시오. 내 얼른 집에 가서 가서 밥을 갖다 드리리다.” 현씨는 소를 옆 밭에다 가두어 두고 집으로 달려가 밥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앉아 있어야 할 여인이 온 데 간 데 없었다. “배가 고파서 걸어갈 기력도 없는 것 같았는데, 이상한 일이로구나.”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물론이고 들판에도 여인은 없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여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령님이 틀림없어!‘ 그래서 현씨는 가져간 밥을 여인이 앉았던 자리에 올렸다. 그 후 현씨는 정월이 되면 그 자리에 정성껏 만든 제물을 차려 놓았는데, 해마다 농사가 잘 되고 살림이 풍요로워졌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도 현씨를 따라 정성을 드리기 시작하여, 그곳이 바로 광평마을의 본향당이 되었다고 한다.

[현황]

노형동 광평당은 2002년 당시 시가지 확장 계획으로 도로에 포함되어 철거되었는데, 복원 사업이 결정되면서 현재 어린이놀이터 안에 부지를 마련하고 옛 모습을 살리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노형동 광평당의 신목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잘려 나가 아쉬움을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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