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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심 할머니의 일상생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T01018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집필자 문순덕

장작불에서 연탄으로

제주목 관아를 ‘영’이라 불렀고, 제주목 관아관덕정 사이에 있는 골목 일대를 ‘영뒷골’(영의 뒤쪽에 있는 골목이라는 뜻임)이라 한다. 처음에는 ‘영뒷골’에 살다가 태평양전쟁이 한참일 때 집을 지어서 이사했다. 김금심은 4·3 때 여중생이었고 북교 후문 전신전화국 사택 근처에 살았다. 그 당시 이 근처는 주택가가 아니었다. 묵은성에도 농사짓는 밭들이 있었다. 주로 보리농사를 했는데, 원예도 하고 우영팟(텃밭)에 양파, 대파 등 채소도 재배해서 자급자족을 했다. 1940년대에 친정집을 지으니까 차츰차츰 사람들이 집을 지어서 모여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금심은 삼도2동에서 기와집에 살았는데 아궁이 땔감으로 장작과 숯이 있었다. 1950년대에도 장작을 때는데 아궁이를 때면 안방만 따뜻하니까 주로 이 방만 이용했고 다른 방은 굴묵(제주도의 전통적인 난방 장소)을 때야 방이 따뜻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통나무를 구입하고(마차 한 대 분량) 한 사람을 사서 장작을 깨고 이를 쌓아두면서 겨울을 지냈다. 김금심이 결혼해서 살던 집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집이어서 아무리 장작을 때도 방이 따뜻하지 않아서 온돌로 고친 다음에 생활하다가 1960년대 초부터 연탄을 사용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19공탄이 나오니까 아궁이를 연탄아궁이로 개조해서 사용하다가 내로식 연탄통을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간데기(숯풍로)가 있었고 화로를 사용하다가 곤로가 나왔다. 연료 변천 과정을 보면 ‘간데기(풍로)→연탄→석유풍로→연탄난로→석유난로→가스난로’ 등이다. 1960년대에 유창산업이 있던 뒤쪽에(지금은 도로임) 대동연탄공장이 있었고, 연탄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장이 여러 군데 생겼다. 졸락코지(산지천 배 모형이 있는 북쪽 맞은편 바다)에도 연탄공장이 있었고, 중앙성당 근처, 광양(이도동)에도 있었다.

부엌의 혁명(가정용 가스 보급)

김금심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오면서 가스를 사용했다. 1969년에 집을 지어서 1970년 5월에 이사와서 지금까지(2006년) 37년간 살고 있다. 1969년 겨울에 집을 지으려고 부산에 가서 목재를 한꺼번에 구입해 왔다. 그 전에 제주도에 가스회사가 생겼지만 싱크대라는 가구는 없었다. 김금심이 적접 목재를 사러 부산에 갔다가 오리표 싱크대 철판 위에 가스레인지가 있는 것을 보게 되어서 그것을 꼭 사오고 싶었다. 건축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가스레인지 2구만 사왔다. 싱크대는 지금처럼 잘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윗부분만 사왔다. 제주도에서 와서 목수에게 부탁해서 한 보름 간 공들여서 싱크대를 완성했다. 제주시에서 탐라가스회사가 먼저 생겼다. 묵은성에 담배가게 하는 데가 가스회사 사무실이었다. 가스통을 불러서 가스레인지를 연결해서 사용하니까 가는 사람 오는 사람마다 신기하다면서 구경하러 왔었다. 그 당시 가스통은 5㎏짜리 조그마한 것이었다. 그 당시 묵은성에서 가스레인지를 사용한 한 집은 몇 가구 안 되었다고 한다.

묵은성 현대식 주택

묵은성에서 1960년대 말에도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집은 한 열 손가락에 들 정도였다. 김금심은 집을 지을 때 기름보일러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집을 구경하러 다녔다. 그 때 기름보일러를 설치하면 화부가 있었다. ‘화부’란 기름보일러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여기 저기 물어보면 기름보일러를 설치하지 말라면서 기름값을 어떻게 감당하려느냐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때는 연탄보일러가 유행했다.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이거야말로 화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루에 두 번씩해서 8개를 갈아 놔야 하고 집 전체를 따뜻하게 하려면 연탄도 많이 소모될 것 같아서 무턱대고 기름보일러를 설치했다. 기름보일러를 설치하려니까 공간이 많이 필요해서 지하실을 팠다.

지하실을 파는데 얼마나 걸렸다고. 요즘 같으면 포크레인으로 몇 번만 찍으면 끝나버릴 건데 보일러실이 이 방만한데 거의 20일 걸렸어요. 삽으로 곡괭이로 땅을 파면서 보일러실을 만든 거라.

이제는 집 밖에 보일러실을 만드는데 그때는 초창기여서 힘들었다고 한다. 1970년에 나름대로 현대식 주택이어서 아는 사람들이 구경하러 다녔다고 한다. 부엌에 와서 가스레인지도 구경하고, 기름보일러실도 구경했다. 또 하나 이 집의 최신유행은 집 안에 수세식화장실을 만든 것이다. 1970년 후반에 신식 집을 지을 때는 이러한 것들을 기본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동문시장에 장보러 가기

해방이 되고 나서 제주시 동문로터리에 동문시장이 생겼다. 처음에는 상설시장이 형성되어도 번듯한 건물이 없었고 등짐을 지고 와서 물건을 팔았다. 그러다가 큰 비가 오면 시장에 물이 고여서 현대식 건물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동문시장 주 고객은 제주시 사람이지만 모든 상거래가 이곳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니까 시골에서도 와서 많이 팔았다고 한다. 길거리에 앉아서 파는 상인도 있었으며, 자기가 앉는 영역을 표시해 두고 지속적으로 한 곳에서 장사를 하기도 했다. 동문시장과 비슷한 시기에 서문시장(관덕정 서쪽)도 생겼지만 주 이용객이 동문시장으로 몰리면서 서문시장은 상권이 크게 형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동문시장은 부두와 인접해 있어서 상권의 입지조건이 충분했으며, 여길 이용하다가 나중에야 서문시장으로 가는 정도였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에 중앙로에 지하상가가 생기면서 동문시장 이용객들이 이쪽으로 몰렸다고 본다. 김금심도 집에서 걸어서 지하상가를 돌아보면서 동문시장까지 다녔다고 한다. 특별히 구입할 물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통하는 도로 역할을 해서 이용한다고 했다. 2006년 10월 추석 준비할 때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지하상가를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묵은성 사람들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김금심은 주로 동문시장에 다닌다고 한다. 거기가 품목도 다양하고. 그런데 탑동에 대형마트가 등장하면서 이곳을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집에서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고 여름에는 시원한 공간에서 돌아다니다가 음식을 사 먹기도 한다고 한다.

나의 삶이 묻어있는 삼도동

김금심은 삼도2동에서 한 평생(70년)을 사니까 특별히 불편한 것은 없다고 한다. 제주시에서 제주북초등학교가 1등 학군일 때는 주소지를 옮기면서 입학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학생수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어서 아쉬움이 있다고 한다. 김금심이 젊은 시절에는 교육 환경도 좋아서 이사할 생각도 없었고, 재산 증식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집을 옮기고 싶지 않고, 생소한 데 가서 어떻게 적응할까 하는 걱정도 된다고 한다. 아파트에 이사 가면 편리한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많을 것 같다고 한다. 며칠 전에(2006년 12월) 친구가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고 하니까 “거기 가서 살면 대문 밖을 나오면 아는 사람도 없고 주로 젊은이들이 사는데 어떻게 적응할 것이냐”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김금심은 지금도 이 동네가 좋고, 단독주택이라 겨울에 춥기는 하지만 보수해서 살면 된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움직인다는 것은 힘들다고 한다.

"내가 지금 생각해 보니까 우리 시어머니가 광양(제주시 일도2동)에 살았는데 돌아가시기 10년 전에 우리와 같이 살자고 하니까 “나가 움직일 때까지는 여기서 살켜.” 했어요. 어머니가 우리집에 오시면 방도 따뜻하고 모든 것이 편리할 텐데 왜 안 오시냐고 하니까, “나가 거기 가면 하늘만 보멍 산다.” 하는 거라. 무슨 말인가 생각해 보니까 거기(광양)에는 아는 분들이 있으니까 대문만 나오면 다 익숙한 얼굴이고, 할머니들이 혼자 사시니까 동네 할머니들도 마음대로 드나들고, 새벽 4시만 되면 며느리하고 같이 사는 할머니들이 잠도 없으니까 우리시어머니한테 찾아오는 거라."

"“할망 잠시냐?” 하면서 들어와서 말도 하는데 아들집으로 내려오면 동네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고 했지.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까 우리 시어머니가 나이 들수록 자식보다도 친구가 더 소중하다는 말이 실감나요. 그런데 요즘은 우리 동네도 도시처럼 왕래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옛날에는 동네 친목회도 있었는데 나이 드니까 한 사람 두 사람 빠져버리니까 모임도 없어졌어요."

김금심은 남편이 살아있어서 그런지 아직은 외롭지도 않고 아파트 생활이 편리할 것 같지만 단독주택을 선호한다고 한다. 지금도 여름철에 무더우면 집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 가서 한바퀴 돌면서 다리도 풀고, 생활이 편리하니까 다른 곳으로 이사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부부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할 말도 없고, 텔레비전 봐도 별로 재미도 없으니까 마트에 가서 걸어 다니고, 쇼핑도 하고, 음식도 사 먹고 나름대로 즐기다가 돌아온다고 한다. 도시 노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삶의 패턴이기도 하다.

종교생활

김금심은 친정 부모님이 불교신자여서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하게 되었으며, 관음사 포교당을 다니다가 제석사(도남동 소재)에 다녔다. 결혼하고 보니까 시어머니도 제석사 신도였다. 종교에 대해서는 특별히 고민해 보지 않았고, 친정과 시가의 종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며, 가끔 절에 다니는 정도라 한다. 남들처럼 백일이나 돌 불공을 하지 않고, 초파일, 칠석, 동지 제일에 참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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