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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천 할아버지의 직업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T06007
한자 -職業-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집필자 심재석

김녕사굴 개발과 음식점 개업

개척 당시인 1968년에는 사굴 주변이 모래밭이었다. 그때 방 한 칸짜리 초가집을 짓고 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굴을 개발하고 주변에 변변한 먹거리가 없었던 1974년도에 “사굴옛집”이라는 제주도 고유의 음식점을 개점하였다. 여기에서는 빙떡, 오메기떡, 새미떡, 인절미, 침떡과 같은 떡 종류와, 갯나물, 두릅, 고사리와 같은 채소류, 미역채, 톳채 등 해조류, 그리고 깨죽, 콩죽 등을 만들어 주로 관광객들을 상대로 음식을 판매하였다.

아랫채 신축

겨울 사냥철이면 늘 제주도를 찾아왔던 일본에 있는 조일제철신학빈 씨가 김군천 집에 머물렀다. 그래서 그때 목욕탕도 만들고 방을 만들었다. 1968년도에 30만원을 줘서 집을 고쳐 방을 만들었다. 당시 김포 세관에서 근무하던 탁모 씨로부터 소개를 받아 신학빈 씨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사냥 친구로 친분을 다지게 되었다.

김군천은 사냥도 하고, 사굴도 관리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인맥이 넓어졌다. 신학빈 사장은 1968년 경북 포항에 포항제철 건설을 추진하던 사업가이기도 하다.

사굴의 종합 관광지화

김녕사굴을 개발하고 관리하던 김군천은 주변의 우려와 조소를 무릎쓰고 개인 사비를 들여서 10여 년 간 주변을 가꾸어서 사굴을 개발하고 관광지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처음 사굴과 인연을 맺은 그는 안정된 직장인 제주어업협동조합 김녕출장소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김녕사굴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는 뜻있는 청년 6명을 모아서 사굴을 정리하고 주변에 밭을 개간하면서 사굴 주변을 개발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6개월 정도 지난 후 뜻을 함께 했던 그들도 다 떠나고 한동안 그는 실의에 빠졌었다고 한다. 그는 다시 심기일전해서 불모의 모래밭에 물을 길어 나르면서 오이, 수박 등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주변에는 동백나무, 왜나무 등을 식재해서 사굴일대를 단장하였다.

김군천의 노력 결과 김녕사굴은 1973년에 관광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어서 시작된 제주도 관광붐을 타고 들어온 관광객들이 찾아들면서 당시 8만여 명의 관광객들이 사굴을 찾아서 제주 관광의 초석을 다졌다. 김군천은 이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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