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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필 할아버지의 직업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T04010
한자 -職業-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집필자 김동윤

직업

현용필은 일제 말기에 징용을 피하기 위하여 함경남도 흥남의 나사 공장에서 근무한 것 외에는 줄곧 농사를 지었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한시를 향유하는 전형적인 처사(處士)였다고 할 수 있다. 현용필의 경우, 당시 노형 사람들이 다 그러했듯이, 예전에는 보리, 조, 콩, 고구마, 유채, 마농(마늘), 메밀 등을 심었다. 1940~50년대에는 보리, 조 등을 많이들 심었지만 형편이 넉넉지 못했다. 아이들을 교육시키려면 크지 않은 규모의 농사로는 힘들었다. 1950년대에 송아지를 처음 샀는데, 당시의 가정경제는 농사와 목축이 함께 이루어져야 가능했다. 자녀들은 대학에 갈 때 학자금 대출을 받아 직장에 들어간 뒤 스스로들 갚아 나갔다고 한다. 사태 이후 모두들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풍족한 생활을 하기는 힘들었다. 넙은드르에서도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감귤 농사가 고소득 작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현용필도 감귤 농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다른 농사를 할 때보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감귤 농사는 1970년대 초반 54세의 나이에 시작해서 30년 동안 하다가 2001년에 1,200평 규모의 과수원을 작은아들에게 물려주면서 사실상 농사를 그만두었다. 과수원은 제주도 당국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폐원했다. 체력은 지금도 괜찮기에 운동삼아 콩도 심어보고 오가피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농사를 지어서 살기가 힘들고, 일당도 안 나오는 지경이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폐원한 과수원은 그린벨트가 풀리고 도로가 나면서 교통이 좋아졌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작은며느리가 그 한쪽에 ‘자연어린이집’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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