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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191
한자 松堂本鄕堂
영어음역 Songdang-ri Bonhyangdang
영어의미역 Shrine for the Teutelary Deity of Songdang-ri
이칭/별칭 웃손당 벡줏당,송당리 본향당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집필자 한진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본향당
관련인물 벡주또 마누라신
둘레 약 200m
면적 약 330㎡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지도보기
소유자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 지정번호 제주도 민속자료 제9-1호
문화재 지정일 2005년 3월 30일연표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본향당.

[개설]

송당 본향당의 주신은 벡주또 마누라신이다. 벡줏또, 또는 금백조, 김백조라고도 불리는 벡주또 마누라신은 송당리 사람들의 생산과 물고, 호적 등 종합적인 사항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벡주또 마누라신은 남편인 소천국과의 사이에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았는데, 이 자손들이 제주도 전 지역의 마을로 흩어져 당신으로 좌정하였다고 한다. 이 같은 점에서 송당 본향당을 제주도 각 마을 당의 조상으로 여기며 ‘불휘공[태초의 뿌리]’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전설로서 내려오는 내력담에는, 벡주또 마누라신과 소천국은 아들만 여섯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건립 경위]

옛날 강남천자국의 백모래밭에서 벡주또 마누라신이 솟아났다. 열다섯 살이 되자 벡주또는 천기(天機)를 짚어 보고, 자신의 배필이 제주도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벡주또 마누라신은 제주도로 가 알송당 고부니를에서 솟아난 소천국과 혼인하여 살게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자식들이 여럿 태어나자, 벡주또 마누라신은 이 상태로는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여 소천국에게 농사지을 것을 권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농사를 지을 땅은 많았기에 소천국은 농사짓기 알맞은 땅을 찾아서 소로 밭을 갈았다. 그 사이 벡주또 마누라신은 소천국의 점심밥으로 밥 아홉 동이와 국 아홉 동이를 만들어 왔다. 소천국이 밭을 갈고 있는데, 지나가던 중이 배가 고프다며 밥을 좀 달라고 했다. 소천국은 먹으면 얼마나 먹겠나 싶어 자신의 점심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 중이 밥 아홉 동이와 국 아홉 동이를 모두 먹고 달아나 버렸다.

소천국이 점심을 먹으려고 보니 빈 그릇만 남아 있었다. 소천국은 배가 고파서 밭을 갈던 소를 잡아먹고는 옆에서 풀을 뜯고 있는 남의 소까지 잡아먹어 버렸다. 벡주또 마누라신이 와보니 남편이 소 대신 밭을 갈고 있었다. 이상하여 이유를 물어 보니, 중이 점심을 먹고 도망 가 자기네 소와 남의 소까지 잡아먹었다고 말한다. 벡주또 마누라신은 소천국에게 남의 소까지 잡아먹은 소도둑놈이라며, 땅 가르고 물 갈라 살림을 분산하자고 하였다.

벡주또 마누라신은 웃송당에 자리를 잡아 살고, 소천국은 알송당에 자리를 잡아 첩을 하나 얻어 사냥하며 살았다. 살림을 가르고 나서 아들[궤네기또]이 태어났는데, 벡주또 마누라신은 아들이 세 살 때 아버지를 보여 주기 위해 소천국을 만나러 간다. 어린 아들이 어리광을 부리다가 잘못하여 아버지의 수염을 뽑았는데, 소천국은 화를 내며 뱃속에 있을 때도 살림을 가르게 만들더니 나서도 불효한다며 무쇠석함에 넣어 바다에 던져 버린다.

무쇠석함은 요왕국으로 흘러들게 되었다. 궤네기또는 용왕의 셋째 딸과 혼인하고 요왕국에서 머물렀는데, 궤네기또가 너무 많은 음식을 먹는다고 부부가 함께 쫓겨나 강남천자국으로 나왔다. 마침 강남천자국은 이웃 나라와 전쟁 중이어서, 궤네기또는 무장이 되어 쳐들어오는 적들을 모두 물리친다. 이에 천자는 크게 기뻐하며 땅과 물을 떼어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하고 제주도로 돌아왔다.

그런데 세 살 때 무쇠석함에 띄워 보낸 아들이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를 내면서 돌아오자 아버지 소천국은 죽어서 알손당 고부니를 당신으로 좌정하고, 어머니 벡주또 마누라신 역시 겁에 질려 도망가다 죽어서 웃손당 당오름의 당신이 되었다고 한다.

[위치]

송당리 서쪽 사거리에서 남쪽에 위치한 송당 체육공원 맞은편 소로를 따라 300여 미터를 가면 당오름 자락에 자리한 본향당이 나타난다.

[형태]

송당 본향당은 원래 돌담으로 둘러싸인 제장 안에 잡석으로 쌓은 제단과 궷문이 두 개 있는 모양이었다. 최근에 정비하여 제단을 가공된 현무암 반석으로 쌓은 뒤 중앙에 궷문을 크게 만들어 놓았다. 당집 안에는 궤집이 있는데, 그 안에 옷감과 신발·가락지·비녀 등 갖가지 물품들을 넣어 두고 있다. 제단 좌측에 기와집으로 만든 정자 모양의 건물을 지어서 당굿을 할 때 준비하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현황]

송당 본향당에서는 매년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신과세제[음력 정월 14일]와 영등굿[2월 14일], 마불림제[7월 14일], 시만곡대제[10월 14일]를 올린다. 이 가운데 정월의 신과세제가 가장 크게 치러지는데, 다른 지방이나 해외에서 사는 마을 출신자들도 대거 참석한다. 2월에 올리는 영등굿은 송당리와 같은 중산간 마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인데, 해안가 마을에 비해 그 규모가 비교적 작다.

[의의와 평가]

제주도 민간 신앙에서 본향당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면서 민속 자료로 지정되어 관리가 잘 되는 편이다. 그러나 과거의 원초적인 모습을 현대식으로 개축하여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