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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상옷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638
영어음역 hosangot
영어의미역 burial garment
이칭/별칭 저승옷,수의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집필자 고부자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이용되었던 전통 수의(壽衣).

[개설]

제주에서는 수의를 ‘호상옷’이라고 한다. 저승은 영생불사 하는 곳이라고 믿었으며, 호상옷은 본인은 물론 자손들도 온갖 정성을 다해서 최상(最上)의 것으로 장만하였다.

호상옷 마련이나 중요성은 1960년대까지도 확고했으나, 1970년대 이후는 차츰 격식과 중요성에 대한 개념이 희박해지기 시작했다.

[종류 및 내용]

남자 옷은 바지에 저고리를 기본으로 하고, 제일 겉옷은 도포(道袍)였다. 도포는 ‘도복’ 또는 ‘큰 옷’이라고도 하며 청색이 최상이었다.

여자는 남성에 비해 옷가지도 많고, 색도 혼례복과 같이하였다. 제일 큰 예복은 장옷이다. 상의는 적삼과 녹색회장저고리가 기본이고, 하의는 속옷으로 ‘소중이’(또는 속속곳) ‘고장중이’(고쟁이) ‘바지’ ‘굴중이’(단속곳)를 입고, 그 위에 치마 2벌(청·홍)이 격식이었다.

염(殮)할 때는 제일 먼저 가슴과 허리를 ‘(다른)허리’ 또는 ‘군(여벌)허리’로 싸매고, 머리에는 남자의 복건에 해당되는 여모(女帽)인 ‘엄뒤저고리’를 씌웠다.

옷 이외에 남녀 공통으로 버선, 신(‘저승신’), 얼굴싸개[暝目], 손싸개[幄手], 배싸개[裹肚], 베개, 손토수, 오낭, 대렴포[大殮衾], 소렴포[小殮衾], 천금[天衾], 지요[地衾,] 두룸포(베), 매치베, 출상(出喪)과 하관(下棺) 때에 사용되는 명정, 공포, 현훈·오색실이 있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윤달·윤년에 만들면 좀이 안 슬고 탈이 없어 좋다 하여 대개는 윤달이나 윤년이 든 환갑 때 마련했다. ‘호상에는 맹지[明紬]가 최고’라고 하였다. 삼베는 ‘메치베’(묶음베)만 쓰고, 가난한 사람들이 썼다.

‘이사 끝, 상사(喪事) 끝’이라는 말이 있다. 이사나 장례가 끝난 다음에 잘못하면 ‘후 탈’이 따르게 마련이라 하여 특히 상장(喪葬) 때 주의하였다.

호상옷 마련 때는 반드시 지킬 것과 금기할 것이 있었다. 특히 눈 및 얼굴이나 손에 닿는 것은 안은 붉은 색, 겉은 검정색으로 했다. 빨강은 후손이 출세를, 검정은 망인이 저승에 안착하도록 함을 뜻한다.

또 겹에는 거죽과 안이 붙어 있으면 자손이 발복(發福) 못하기 때문에 누에고치를 얇게 편 ‘풀솜’(설맹지, 雪明紬. 雪綿子)을 넣었다. 목화솜은 시신이 썩을 때 새카맣게 되기 때문에 금했다.

“이 호상 저 호상 하여도 베개 호상이 제일이다.”는 말이 있다. 베개는 출상(出喪) 도중에 시신의 머리가 뒤틀리면 후손 중에 불구자(不具者)가 나오고, 집안에 액운이 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베개 속에는 풀솜이나 모래·찰흙·재·숯가루를 넣었다.

금기로는 ‘매듭짓기’와 ‘뒷바느질’ 및 두루마기와 모시옷을 금했다. 매듭은 이 세상에서 엉킨 한(恨)이고, 뒷바느질은 망인(亡人)이 저승에 가서도 이승을 돌보느라 안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루마기는 ‘두루 막힌 옷’이므로 자손들이 출세하지 못하고, 모시는 자손머리에 새치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옷 보관은 명주는 좀이 잘 슬기 때문에 담뱃잎을 같이 두었는데, 차츰 좀약을 쓰기 시작했고, 칠월칠석(七月七夕)이나 봄·가을 좋은 날씨를 택해서 거풍시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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