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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123
한자 濟州人
영어음역 Jejuin
영어의미역 Jeju People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282-3[삼무로 5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문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잡지
관련인물 강보성|김용해
창간인 강보성
발행인 김용해
판형 4x6배판
창간연도/일시 1989년 5월연표보기
종간연도/일시 1990년 9월연표보기
총호수 13호
발행처 사단법인 제주도 문제연구소 지도보기
발행처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282-3[삼무로 56]
소장처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처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 1[제주대학로 102]
홈페이지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http://chulic.cheju.ac.kr)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1989년 5월에 창간하여 1990년 9월에 종간된 월간 잡지.

[개설]

제주도 문제연구소에서 창간한 『제주인』은 1990년 9월 13호까지 발행하고 종간했다.

[창간경위]

제주도 출신 민자당 국회의원 강보성(姜普性)이 설립한 사단법인 제주도 문제연구소에서 정치 분야와 관련한 잡지를 표방하며 1989년 5월 창간하였다.

[형태]

판형은 4x6배판이고 120~180면의 규모이다. 정가는 2,500원이었으며, 계간호로 발행된 13호는 2,000원이었다. 인쇄는 동방인쇄공사, 성진문화사에서 했다.

[구성/내용]

제주 지역 인물 소개를 주제 기사로 정했던 『제주인』은 화제 인물에 중점을 두면서도 지방자치제 실시를 앞두고 지방자치 관련 주제와 제주 지역 출신 전·현직 국회의원 동향 등 정치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제주 4·3사건에 관한 기사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제주인』은 창간사를 통하여, “제주도는 그동안 온갖 외부의 침입과 압력과 중앙 집권식 개발이란 권력 속에서 주인의 자리와 권리는 무시되어 버렸고 보존되고 가꾸어야 할 문화와 자연은 파손되었다… (중략) 이제 우리는 이를 그냥 외면하고 내버려 둘 수 없다. 민주와 자유의 아침이 열리는 이 새로운 시대 위에서 괴롭고 아픈 상처를 딛고 분연히 일어서서 우리들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창간호에서는 특집 좌담 「제주인은 말한다」, 제주도 각계 인사 30인이 말하는 「제주인 이것이 문제다」, 4·3특집으로 「4·3 설문조사 보고서」, 북한 문제 연구가 김남식(金南植)의 「4·3강연 요지」, 김인생 할머니의 「4·3체험기」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었다.

창간호에서 특집으로 편집된 「4·3 설문조사 보고서」는 제주도 문제연구소에서 제주도민 1,200명을 대상으로 60일간 4·3에 대한 설문을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때 응답자의 72%가 4·3사건의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외에도 4·3사건에 관한 기사는 「4·3을 듣는다」(2호), 「4·3 증언 -이상하·박춘택 씨」(4호), 「4·3 증언 -원동마을 사람들」(5호), 「4·3 현장을 가다 -이덕구 산전 등반기」(11호), 「존 메릴 교수의 4·3 논문」(12호) 등이 있다.

『제주인』은 인물 중심의 잡지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표지에 컬러로 인물 사진을 편집했다.

내용 면에서는 지역 문제나 지방 정치에 대한 주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한 반면, 실질적인 사주인 국회의원 강보성(姜普性)에 관한 기사를 과대 편집하여 객관성과 공정성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었다.

[변천과 현황]

제주에서 정치인이 발행한 잡지로는 『개발제주』에 이어 두 번째이다. 『개발제주』가 제주 지역 개발에 관한 과제에 초점을 맞춘 반면 월간 『제주인』은 인물을 기사의 주제로 삼은 점이 특이하다.

1990년 5월 12호까지 월간으로 발행하고 같은 해 9월에 계간지로 바꾸어 통권 13호를 발행한 후 종간했다. 발행·편집인은 김용해(金龍海)이고 편집기획은 부창민(夫彰敏)이 담당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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