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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810
한자 濟州三陽洞遺蹟
영어음역 Jeju Samyang-dong Yujeok
영어의미역 Historic Site in Samyang-dong, Jeju
이칭/별칭 없음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 1559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김경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9년 11월 16일연표보기 - 제주 삼양동 유적 사적 제416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제주 삼양동 유적 사적 재지정
성격 취락 유적
지정면적 14,129.8㎡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 1559 지도보기
소유자 제주시 외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탐라 성립기 취락 유적.

[위치]

유적의 동쪽에는 ‘음나물내’라는 소하천이 형성되어 있다. 유적은 해안으로부터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주변에는 해발 172m의 원당봉이 있다.

유적은 10m 이상 되는 해안 사구층 위에 해발 20m 내외의 비교적 평탄한 대지상에 형성되어 있다. 유적의 분포 규모는 동서 1.2~1.5㎞, 남북 0.5~0.7㎞로 면적은약 100,000㎡(30,000여 평) 정도이다. 이 지역은 제주 지역에서 보기 드문 미사질의 황갈색 점토층이 폭넓게 분포하고 있어 취락의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96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 1559번지 일대에 대한 토지 구획 정리 사업 과정에서 유구가 확인되어 세 차례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1차는 1997년 4월 24일~10월 30일까지 진행되었으며, 2차는 1997년 12월 10일~1998년 10월 5일까지 진행되었다. 3차는 1998년 11월 18일~1999년 7월 8일까지 진행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탐라 성립기에 형성된 제주 북부 지역 최대의 대규모 취락 유적으로 밝혀졌다. 확인된 유적은 원형 수혈 주거지 173기, 방형 주거지 17기, 불다짐 소성 유구 2기, 부정형 수혈 유구 20기, 굴립주 건물지 8기 등이 있다.

[형태]

주거지는 대략 200여 기가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는 대부분 원형이지만 (장)방형계도 일부 확인되었다. 방형계 주거지가 원형계 주거지에 선행하는 형식으로 이해된다. 원형 주거지는 대체로 내부 중앙부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주거지는 대부분 내부 시설이 전혀 파괴되지 않은 상태로 확인되었으며, 주거지 내부에서도 다량의 유물이 원상 그대로 출토되었다. 특히, 원형 주거지는 한반도 중서부 지방과 호남 지방 등에서 유행한 ‘송국리형 주거지’로 한반도 중서부 지역 혹은 호남 지역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원형 수혈주거지 중 규모가 가장 작은 것은 직경 220㎝ 내외이고 가장 큰 것은 660㎝ 내외이다. 소형과 대형은 일부에 한하며 대부분의 주거지는 직경이 평균 4m 내외이다. 장축 방향은 해안선과 평행한 동서 방향이 대부분이고 출입구는 남향으로 추정된다. 또한 일부 주거지에서 확인된 출입구 역시 남향으로 축조되어 있다. 따라서 주거지는 해안에서 불어오는 해풍의 직접적인 영향을 피하여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수혈 유구와 함께 불다짐 소성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또한 굴립주 건물지는 8기가 확인되었다. 이 굴립주 건물지가 원형 주거지가 집중적으로 축조된 곳을 피해 축조된 점에서 당시 취락의 배치 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특히, 5지구에서는 약 5~6기 정도의 주거지가 중앙부에 광장을 조성하고 주변으로 돌아가면서 배치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로부터 당시에는 5~6기의 주거지가 하나의 단위 주거군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

약 1,000여 점 이상이 출토되었다. 주로 적갈색경질토기인 삼양동식 토기가 대부분이었다. 이외에 직립구연토기·원형 점토대토기·파수부 토기·원뿔형 토기·뚜껑·발형 토기·대부발·토제 방추차·고석·연석·요석·마제 석착·마제 석촉·마제 석검·지석·옥환·유리 구슬·동촉·동검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주거지 내부에서는 보리·콩·복숭아 등의 탄화 곡물도 출토되었다.

한편, 제주 삼양동 유적의 말기에 연질 타날문토기와 함께 철제 도자가 출현하는 점에서 제주 삼양동 유적 말기에는 제주에 철기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제주 삼양동 유적은 제주 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사된 대규모의 야외 취락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유적이 조사되기 전에는 제주 지역은 기후 조건으로 인해 야외 취락이 조성되기에 불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제주 전역에 산재한 동굴과 바위 그늘 유적이 야외 취락을 대신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다가 이 유적이 발굴조사 됨으로써 탐라 성립기 취락의 성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주거지의 배치와 유물 출토 양상에서 거주 공간상에 신분의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수 계층이 소유할 수 있는 옥환, 동촉, 각종 장신구류 등 위신재의 존재는 불평등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을 말해주고 있다. 무문토기시대 유적인 상모리 패총 단계에서는 이러한 불평등 계층의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 삼양동 유적 단계에 이르면 대규모 취락의 형성과 함께 불평등 계층이 출현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유적의 발굴로 인해 제주 사회의 당시 신분 계층 및 정치 사회 구조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확보한 것이다.

또한 이 유적은 탐라 성립기~탐라 시대 전기로 연결되는 전체적인 취락의 변천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즉, 화순리와 외도동 유적 등과의 취락 양상 비교를 통해 전체적인 취락의 변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1999년 11월 16일 사적 제41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4.10 항목명 수정 제주 삼양동 선사유적을 제주 삼양동 유적으로 수정(201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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