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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다라쿳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522
한자 月坪-
영어음역 Wolpyeong Darakutdang
영어의미역 Wolpyeong Bridge Shrine
이칭/별칭 신동이루 다라쿳당,신대기루 다라쿳당,월평·영평상동 본향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 1137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순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신당
건립시기/연도 미상
둘레 30.5m
면적 약 26㎡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 1137 지도보기
소유자 강교훈 외
문화재 지정번호 제주도 민속자료 제9-5호
문화재 지정일 2005년 4월 6일연표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개설]

월평다라쿳당에서는 부부신인 ‘산신백관’과 ‘은기선생 놋기선생’ 및 ‘제또’의 3신위를 모신다. 본풀이에 의하면, ‘산신백관’은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부정한 신으로 바람 아래 좌정한 수렵·목축의 신이다.

‘은기선생 놋기선생’은 강남천자국에서 온 외래신이며 순결한 신으로 바람 위에 좌정한 농경·산육신이다. 특히 그릇을 관장하는 신으로 아기의 나쁜 버릇을 고쳐 주며 아기를 보살핀다. ‘제또’는 아기의 부스럼을 고쳐 주는 신으로서 ‘아기또’라고도 하는데, 이와 같이 세 신이 좌정하여 월평마을의 생업을 수호하고, 아기를 보살펴 주는 것이다.

아픈 아기를 위해 당에 가서 빌고 난 후 돌아갈 때는 가지고 왔던 그릇을 깨고 가는데, 이 때문에 예전에는 깨진 그릇이 많이 쌓여 있었다. 그릇을 깨는 이유는 ‘귀신방쉬’라고도 하고, 그릇을 깨고 와야 아기가 그릇을 깨는 버릇이 고쳐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월평동의 옛 이름이 ‘다라쿳’인데서 다라쿳당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는데, ‘다라’는 높다는 뜻을 가진 고구려어로 ‘높은 곳에 있는 숲 또는 덤불’이란 뜻이다.

[건립경위]

다라쿳은 『탐라순력도』(1702년)에 ‘별라화(別羅花)로 표기되어 있고, 『탐라지도』(1709년)에는 ‘별라화리(別羅花里)’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다라쿳의 한자 표기이다. 이로 미루어 마을이 세워진 시기는 300여 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이때 신당도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제주시 월평동 제주중앙고등학교 남쪽 속칭 ‘신동이루’ 혹은 ‘신대기루’ 과수원 안에 있다.

[형태]

신목형 신당으로 당 안에 보호수로 지정된 커다란 팽나무가 있고, 그 주위를 둥그렇게 에워 둘러 울타리를 쌓았으며 동쪽 담을 의지하여 나지막한 제단을 마련하였다.

[현황]

당에 갈 때는 메를 세 그릇 가지고 가는데, 그 중 2개의 사발메는 남신 ‘삼신백관’과 여신 ‘은기선생 놋기선생’ 부부신의 몫이고, 나머지 보시메는 아기의 영혼을 지키는 ‘보제또’의 몫이다. 월평다라쿳당은 2005년 4월 6일 시도민속자료 제9-5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