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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448
한자 王子
영어음역 wangja
영어의미역 princ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관직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일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통일신라시대
폐지연도/일시 1402년연표보기

[정의]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제주 지역의 토착 세력 가운데 차상위 토호가 역임했던 관직.

[제정경위 및 목적]

통일신라 때 제주의 고후(高厚)와 고청(高淸), 그리고 셋째가 바다를 건너와서 왕에게 조공을 바치자 왕은 고후에게 성주(星主), 고청에게 왕자(王子), 셋째에게는 도내(徒內)라 하는 관직을 주었는바, 왕자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다.

[담당직무]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관직으로, 성주와 더불어 외관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혹은 외관과 협력 관계를 맺으며 중앙 정부의 제주 지역 관할에 참여하였다.

[관련기록]

이원진(李元鎭)『탐라지(耽羅志)』에 의하면, “신라 때 고후(高厚)와 고청(高淸), 그리고 셋째가 바다를 건너와서 조공하니 왕이 기뻐하여 작호를 주었는바, 고후에게는 성주, 고청에게는 왕자, 셋째에게는 도내(徒內)라 하고 국호를 주어 탐라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변천]

고려 태조가 통일을 달성한 지 2년이 지난 938년(태조 21) 탐라국 태자(太子) 고말로(高末老)가 와서 알현하니, 성주와 함께 왕자의 관직도 받아들였다. 이로부터 왕자가 성주와 더불어, 중앙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 외관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제주 지역에 외관이 파견되는 1153년(의종 7) 이후부터는 외관과 협력 관계를 맺으며 중앙 정부의 제주 관할에 참여하였으며, 이로써 고려 때 제주 지역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자치성이 짙은 지방 행정 체계가 기능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중앙집권적 형태의 지방 행정 체계가 강화·실현되는 추세 속에, 1402년(태종 2) 왕자 문충세(文忠世)가 성주 고봉례(高鳳禮)와 함께 성주와 왕자라는 호칭이 분수에 맞지 않는다며 개정하여 줄 것을 청하여 성주는 좌도지관(左都知官), 왕자는 우도지관(右都知官)으로 각각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 이에 따라 16대 464년간 이어졌던 왕자제는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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