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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179
한자 宋廷奎
영어음역 Song Jeonggyu
이칭/별칭 원경(元卿),우수(迂叟)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제주목사
성별
생년 1656년(효종 7)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여산(礪山)
대표관직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경성판관|강원도관찰사|여주목사|제주목사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원경(元卿), 호는 우수(迂叟). 아버지는 송증(宋拯)이다.

[활동사항]

1683년(숙종 9) 증광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1690년(숙종 16) 사간원정언에 올랐으며, 당시 폐출된 인현왕후 민씨 처우문제의 상소를 올렸다. 이어 사헌부지평을 지냈으며, 1696년(숙종 22) 경성판관 재임 중 정사를 잘 돌봐 품계가 올라 1697년(숙종 23) 9월 경기도 양주목사에 부임하여 두 달 동안 재임하였다.

뒤에 승정원승지가 되어 참찬관을 겸임하였고,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가 죽자 고부사(告訃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708년(숙종 34) 강원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절수(折受: 국가로부터 자신의 몫으로 땅이나 결세를 받음)의 폐를 상소하여 강릉·춘천·낭천 등 세 읍의 절수를 폐지시켰다.

1704년(숙종 30) 10월 경기도 여주목사 재임 중 이희태(李喜泰)[1669~1715]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706년(숙종 32) 5월에 떠났다. 제주목사 재임 중인 1704년 겨울 도내의 각 목장을 개축하여 과거 60둔으로 설정해 놓은 것을 1~6소장(所場)은 제주목에, 7~8소장은 대정현에, 9~10소장은 정의현에 속하게 하여 10소장으로 정하였다.

1705년(숙종 31) 정원루(定遠樓)를 중수하고, 1706년(숙종 32) 봄 함덕촌(咸德村) 동쪽 해변에 있는 병산악(屛山岳)에 서산장(西山場)을 마련하여 공마(貢馬)를 포구에 보내는 목장으로 이용하였다.

1705년 수산진(水山鎭)과 차귀진(遮歸鎭) 양진을 승격하여 조방장(助防將)을 배치하던 것을 만호(萬戶)를 배치하였다. 그리고 무당들이 세상을 속이고 백성을 우롱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였으며, 무당들이 소유한 북과 방울 등을 거두어 무기를 만드는데 쓰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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