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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661
한자 李喜泰
영어음역 Yi Huitae
이칭/별칭 대숙(大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보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제주목사
성별
생년 1669년(현종 10)연표보기
몰년 1715년(숙종 41)연표보기
본관 광주(廣州)
대표관직 제주목사|고부군수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대숙(大叔). 아버지는 이광하(李廣河)이다.

[활동사항]

1702년 알성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으며, 1703년(숙종 29) 6월 이형상(李衡祥)[1653~1733]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애매헌(愛梅軒) 동쪽에 청심당(淸心堂)을 건립하였다. 청심당은 영조 때 세병헌(洗兵軒)이라고 불렸다.

또한 해적선 50여 척이 가파도에서 해적질한 것을 전임 제주목사 이형상이 엄히 금하였는데, 이희태는 이러한 사실을 비방하고 해적질을 조정에 과장되게 보고하였다. 조정은 이희태의 보고에 대해 이형상의 조치를 옹호하였고, 이희태는 1704년 10월에 파직되었다.

1705년 9월 제주목사 재임 중 관기 곤생(昆生)과 그 딸 다섯 명을 무고하게 고문한 사실이 탄로나 하옥되었다. 1713년(숙종 39) 9월 전라도 고부군수에 부임하였고 1715년(숙종 41) 11월 고부군수 재임 중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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