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915
한자 福神彌勒
영어음역 Boksin Mireuk
영어의미역 Boksin Maitreya
이칭/별칭 자복,자복미륵,미륵,큰어른,자복신
분야 생활·민속/민속,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1257[만덕로 32-1]|용담동 385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강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석불
제작시기/일시 미상
제작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작자 미상
양식 고려 후기 불교 양식과 토속 양식 결합
재질 현무암
대상구분 미륵상
자세구분 입상
높이 286㎝[동자복]|273㎝[서자복]
대좌높이 66㎝[서자복]
대좌직경 가로 85㎝|세로 70㎝[서자복]
소장처 개인주택[동자복]|용화사[서자복]
소장처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1257[만덕로 32-1][동자복]지도보기|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385[서자복]지도보기
소유자 제주시
문화재 지정번호 제주도 민속자료 제1호
문화재 지정일 1971년 8월 26일연표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주택가 내와 제주시 용담동 용화사 내에 세워져 있는 두 기의 석불 입상.

[개설]

이 두 기의 석불은 사람의 수명과 행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숭배되는 한 쌍의 복신미륵으로, 동자복과 서자복을 말한다. 구전으로는 ‘자복신(재물과 복의 신)’, ‘자복미륵’, ‘미륵불’, ‘큰어른’ 등의 이름으로 불려왔고, 옛 제주성 바깥 동쪽과 서쪽에 두 미륵이 성안을 수호하듯 세워져 있었다.

제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 후기의 불상이 토속적으로 변모하는 과정 중의 한 양상인 것으로 보아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그리고 머리에 씌워진 대패랭이와 비슷한 모양의 벙거지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제주산 다공질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두 미륵은 달걀형의 온화한 얼굴에 인자한 눈매, 우뚝한 코와 커다란 귀, 살며시 웃는 입이 특징적이며, 패랭이와 비슷한 모양의 벙거지를 쓴 입상이다.

동자복은 신장 286㎝, 얼굴 길이 161㎝, 신부 길이 125㎝, 신부 둘레 662㎝, 오른쪽 귀 길이 59㎝, 왼쪽 귀 길이 56㎝, 코 길이 37㎝의 규모이며, 서자복과 달리 눈 위에 눈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반신은 앞가슴에 맞잡은 팔의 소맷자락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서자복은 신장 273㎝, 얼굴 길이 135㎝, 신부 길이 138㎝, 신부 둘레 315㎝, 기단 높이 66㎝, 기단 둘레 335㎝, 감투 둘레 135㎝이다. 기단 위에 있는 석상은 하체가 없으며 양손은 가지런히 펴서 가슴에 대고 있다.

두 미륵의 법의는 통견이지만 목과 어깨 부분에서 하단부까지 앞이 터진 도포 같은 것을 입고 있으며, 문양 표현이 없는 등 토속적인 양식을 잘 보여준다. 형상과 조각 수법이 같은 것으로 보아 동시대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특징]

미륵 신앙은 미륵불, 또는 미륵 보살에 대한 불교 신앙으로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미륵불은 득남, 해상 안전, 풍어, 가정의 행운, 병의 치유 등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한 집안의 조상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동자복은 제주도 민속자료 제1-1호로, 고려시대 때 건립된 만수사, 일명 동자복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그러다 조선시대 때 사찰은 파괴되고 미륵불만 남겨져 현재 제주시 건입동 1275번지[만덕로 13-5] 개인 주택가 뒤뜰에 위치하고 있다.

서자복은 제주도 민속자료 제1-2호로, 제주시 용담동 동한두기용화사 경내에 놓여 있다. 이곳은 고려시대 때 해륜사, 일명 서자복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으로 18세기 중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경에 용화사가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자복은 전염병과 같은 질병을 잘 막아주는 것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근래에는 용화사에서 음력 2월 15일과 11월 15일에 미륵을 위한 불공을 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제주 지역의 미륵 신앙은 자연석, 혹은 미륵불과 같은 석불을 대상으로 하지만, 신들의 성격은 무속신적 성격이 강하다. 복신미륵 역시 토속적 불교 의식과 기자 풍속(祈子風俗)과 용왕 신앙이 융합된 민간 신앙이 결합된 것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