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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328
한자 金京奉
영어음역 Kim Gyeongbong
이칭/별칭 김경순(金京順)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1401-3[관덕로11길 35]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창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1401-3[관덕로11길 35]지도보기
성별
생년 1908년연표보기
몰년 1941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1923년 12월 제주공립보통학교 5년을 중퇴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의 여러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공산주의 항일 지사 이익우(李益雨)를 만나 공산주의 계열의 비밀 조직에 가담하였다.

1929년 9월 귀향하여 한림리에서 양화상(洋靴商)을 운영하면서 항일 운동을 시작하였다. 1932년 5월경 양병시(梁秉時)·장한호(張漢鎬) 등과 함께 한림리에 공산주의 지도 기관을 결성하기로 협의하고, 1932년 6월 한림노동자연구회를 조직하여 책임자 겸 연락부와 부인부를 맡았다.

1933년 1월 강창보(姜昌輔)·이익우 등의 주도 아래 제주도 적색농민조합 창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제주도 전 지역을 대상으로 동지를 규합할 때 김경봉은 한림면·애원면 지역의 조직을 담당하였다.

1934년 7월 양병시·장창구(張昌求) 등과 함께 한림노농연구회를 조직하여 책임자 겸 가두부(街頭部)를 맡아 조직을 확대하던 중 동지 62명과 함께 검거되었다. 1937년 4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고문 후유증으로 1941년 11월 1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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