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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희 할머니의 생애사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T05028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집필자 심재석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7호 진사대 소리 전문가)

어린 시절의 기억들 : 학교 못가고 일하면서 배운 진사대 소리

진선희는 1945년 3월 23일생이다. 출생지는 애월읍 장전리이다. 1948년 4·3사건 이후 용흥에서 자랐고 구엄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라서 진선희가 어릴 때는 여자들은 학교에 잘 안 보냈다.

진선희는 스스로 한글을 터득했고, 책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밤새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밤에는 석유 호롱불을 켰는데, 어머니는 석유 아깝게 무슨 기집애가 책을 그렇게 보느냐고 야단을 치셨다. 하지만 글읽기를 좋아하고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께서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해 주셨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동생들도 돌봐야 했고, 농촌이어서 일도 해야 했다. 그 당시는 농촌의 생활은 각박했다. 어머니께서 일하는데 도와 드리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다.

진사대라는 소리는 일을 하면서 불렀다. 오늘은 이쪽 밭, 내일을 저쪽 밭에서 돌아가면서 일을 했다. 서로 일을 하면서 경쟁하듯 노래를 불렀다.

당시의 일상은 주로 농사일에 매달려서 보냈다. 여름에는 더우니까 해가 뜨기 직전에 일을 하고, 낮에 더울 때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쉬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진사대 소리는 힘들고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부르던 노래였다.

당시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가 일을 했다. 그 중에 누가 일을 하다가 선소리를 하게 되면 일하면서 노래를 했다. 내가 부르면 노래를 쭉 뻗어내면서 소리를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길게 뽑는 진사대 소리는 잘 했다.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 인터뷰를 여러번 했는데, 예전에 부르던 식으로 불러서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17호로 지정되었다.

먹고 사는 이야기들 : 쌀밥은 구경도 못했다

농작물은 조, 콩, 산도(밭벼)를 재배했다. 제주는 바람이 많아서 말, 소를 이용해서 밟아서 재배를 했다. 일을 나가기 전에 아침은 먹고 나갔다. 밥상에는 마늘장아찌 하나, 된장 하나, 콩잎이 주로 올랐고, 젓갈은 자리젓, 멸치젓이 있었다. 특별한 날, 잔치 때나 쌀밥, 돼지고기, 두부, 계란 삶은 것이 있었고, 메밀로 만든 전도 먹을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별다르게 상에 차릴 만한 것이 없었다. 쌀밥이 한 그릇 있으면 연세 드신 분을 드렸고, 그러면 가까운 손자나 아이들에게 쌀밥을 나누어 주셨다. 진선희에게는 그런 분이 안 계셔서 그런 것도 얻어먹은 적이 없었다.

외삼촌이 중매를 선 혼인

결혼은 중매로 했는데 외삼촌이 중매를 섰다. 공부에 한이 맺혔던 진선희는 동생들이라도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육지에 돈을 벌러 나갔다. 제주에 잠시 다니러 온 사이에 어머니가 약혼을 시켰다. 약혼식 전에 외삼촌이 예비 신랑을 데리고 진선희의 집으로 놀러온 적이 있었다. 진선희는 낯선 남자를 보고는 그냥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이후 결혼할 때까지 따로 만난 적은 없었다. 그때 본 것이 결혼 전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었다. 약혼식을 하고 난 뒤 절대 결혼식 때 안 온다고 맘속으로 다짐을 했다. 택일을 했지만 진선희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신랑도 그 뒤 군대에 입대를 했다. 진선희는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결국에는 약혼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25살 때였다.

납읍리에서의 결혼생활 : 축산으로 돈을 벌기 시작

결혼 후 첫 살림은 1971년도에 납읍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시집의 생활이 넉넉하지 못해서 객지로 나가지 않고 납읍에서 돈을 벌어 정착해서 살기 시작했다. 남편이 축산을 했다. 소와 말을 키우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을 해서,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어도 먹고 살 만한 형편이었다. 신랑 이름은 김창종인데 현재는 과수원만 하고 축산은 하지 않는다.

예전에 축산하면서 살림살이를 키울 때는 먼저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그것을 밑천으로 해서 땅을 구입했다. 예를 들면 100만 원짜리 땅이면 20만 원을 주고 구입을 해서 늘 빚에 쪼들렸지만 열심히 살림을 키워왔다.

그렇게 구입한 땅에 밀감나무를 심어서 살림살이가 점차 불어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과수원을 해도 살림살이에 변화가 없었다. 밀감도 소규모로 하다 보니 밀감보다는 소를 키워서 재산을 키웠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살림살이를 일으키려니 힘이 들었다.

어려웠지만 성공한 자식 농사

진선희의 슬하에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 아이들을 출산할 때는 먹고 살기 바빠서 이런저런 신경을 쓰면서까지 지킬 여유도 없어 금기라는 걸 잊고 살았다. 생활이 어려워서 자식들 백일잔치, 돌잔치할 여유도 없었다. 첫째와 둘째 모두 돌 사진도 없다. 남편은 목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고 진선희는 과수원, 밭에서 농사일 하느라 바빠서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때리고 욕하면서 키웠다. 지금도 아이들에게 그것이 제일 미안하다. 지금처럼 차가 있으면 애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불가능했다. 다들 잘 먹이지도 못하고 그랬던 게 제일 가슴이 아프다.

예전에 애기구덕에 넣고 키우면서 진사대 소리를 불러줬다. 구덕 안에는 보리짚을 깔고 그 위에 눕혀서 키웠다. 애기가 오줌을 싸면 보릿짚을 새로 바꿔주면 되었으므로 기저귀도 없이 그냥 구덕에 눕혀서 키웠다. 부모가 입던 헐어진 갈옷을 애기에게 덮어주었고, 애들이 오줌이나 똥을 싸면 그걸 빨아주었다.

구덕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클 때까지는 구덕에서 애들을 키웠다. 아이들이 잘 때 도닥이면서 애기구덕 흥그는 소리를 불러주곤 했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애들이 잠을 잘 잤다. 옛날엔 그러면서 애들과 서로 교감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것 없이 그냥 우유를 먹고 자라서인지 예전 같은 그런 정은 덜한 것 같다.

며느리는 영랑리에서 시집왔는데, 바깥사돈이 돌아가신 후 제주시에서 생활을 했다. 아들은 제주시에 살고 있다. 사위는 애월읍 사무소 앞에서 주유소를 경영한다. 딸은 당시 아시아나 항공 1기생으로 예약실에 있다가, 예약실이 서울에 통합되면서 직장이 없어졌다. 사돈 삼자고 청이 들어와서 결혼을 시키게 되었다. 사위는 딸과 중학교 동창이어서 서로 알고 지내다가 결혼하게 되었다.

금산공원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다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기 전에 진선희의 진사대 소리가 알려지게 된 동기는 1974년인가 75년에 납읍 금산공원에서 있었던 노래자랑 대회가 계기가 되었다. 노래자랑에서 민요나 가요를 부르는데 사회자가 “무슨 노래를 부르겠습니까?”하고 묻길래, “내가 부를 것은 민요도 아니고 가요도 아니다. 옛날에 선조님 네들이 하시던 얼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 간단하게 소리를 하겠다”고 했는데 완전히 히트를 쳤다.

박수 소리가 많이 나왔다. 그 이후에  발리는 소리, 애기흥그는 소리, 맷돌소리와 같은 민요를 다양하게 불렀다. 그렇게 진선희의 노래 솜씨가 알려지자 진선희를 섭외하러 민요 연구가(제주교육대학교 조영배 교수)가 찾아왔다. 그렇게 찾아와서 부탁을 한 후 한참동안 연락이 없다가 밤늦게 집으로 연락이 왔었다. 녹음을 하자고 했다. “밀감 농사하느라 바쁜데 어떻게 소리를 하러 나갑니까?”라고 소리를 치며 거절을 했다. “난 절대 못갑니다.” 라고 했는데 일당을 줄 테니 나와 달라고 했다. 일당이 문제가 아니라 못나간다고 하니 낮 시간은 어려우니 저녁 시간에 시간을 만들어서 녹음을 하자고 했다.

나중에 저녁에 승용차가 집으로 올라와서 진선희를 태우고 녹음하러 갔다. 사실 녹음기로 간단하게 하는 걸로 알았는데, 차를 태워서 어디론가 갔다. 녹음실에서 사람들이 녹음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가기 그래서 마을 사람 2명과 함께 갔다. 리허설을 한번 했는데 연습 없이 해도 되겠다고 해서 바로 녹음을 하게 되었다. 여러 곡을 부르고 왔다.

진선희가 진사대 소리를 하니 조영배 교수님이 바로 이거다라고 하면서 그냥 계시면 문화재로 지정해 드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진선희는 “난 농사짓는 사람이 무슨 문화재냐, 말도 안 된다”고 했는데 결국엔 문화재로 지정되게 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되니 존중해 주는 사람은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따라주는데, 시기하는 사람은 진선희가 돈 봉투나 갖다 주고 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 알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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