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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동의 마을 의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T04007
한자 老衡洞-儀禮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집필자 김동윤

마을제

마을제는 일 년 동안 주민은 물론 마을 전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식(祭儀式)으로 마을제(部落祭), 포제(酺祭), 이사제(里社祭), 동사제(洞社祭) 등으로 불려지며, 혹정혹해(或丁或亥)라 하여 입춘 후 첫 정일 또는 해일 자시에 제를 지낸다. 제일이 결정되면 마을 진입로에 새끼줄을 매어 마을제가 있음을 알리며,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다한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제일 5일 또는 3일 전에 제청에 모여 합숙을 하면서 몸을 정성드려야 한다. 포제 기간 중에 포청을 방문하는 주민들이나 제주시 향우들은 음료수나 금전을 부조하여 성의를 표시하기도 한다.

월랑 할망당

음력 정월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길일을 택하여 당할망에게 세배 및 가정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에서 며칠간 정성을 하고 제물을 차려, 심방을 빌고 당할망을 찾아가 소원을 비는 일이 풍속처럼 되어 있었다. 또한 가정에 불길한 일이 생겼을 때나 큰일을 치를 때도 그 곳에 찾아가 소원을 빌었다. 월랑 할망당에는 억세미당, 능당(가운데 당)과 제신당(세기밭 서녘밭:남녕고 서북쪽) 그리고 마깨낭당(동카름당) 등이 있었다. 제신당과 마깨낭당에는 월랑 동카름 부녀자들이 주로 다녔고, 억세미당(현존 이호경)에는 주로 월랑 서알카름 분들과 이호 이동에서 월랑에 시집온 분들이 많이 다녀 소원 성취와 가내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광평당(너븐드르당)

당제는 여성들이 치르며 개인적으로 당에 찾아가서 제물과 메를 올리고 한 해의 소원을 빌거나,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를 해결해 주도록 빌고 각 제물을 조금씩 떠 넣어 땅에 묻었다. 이를 (궤묻음)이라 하며 정초에는 이러한 (비념)으로 신에게 과세 문안을 드림으로써 한 해를 시작한다. 광평 입구에 위치해 있는 당의 이름은 ‘당팟 세경당’ 혹은 ‘너븐드르 당팟 세경당’이라 한다. 제일은 정해진 날이 없고 생기에 맞춰 아무 때나 쇠(牛)날에 간다. 즉 축(丑)일을 택하여 가는 셈이다. 그리고 신년이 되면 신과세를 지낸다. 음력 정월 상정일이 되면 마을 포제가 행해지며 이 포제가 끝나면 부녀자들은 새벽 아침부터 당에 가는 것이다. 포제가 남성의 마을제라면 이 당제는 여성의 마을제이다. 남성들은 포제를 위하여 제일 3일 전부터 몸 정성을 하듯이 여성들도 당제를 치르기 2~3일 전부터 몸 정성을 드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물은 메 5그릇, 계란 3개(피부병일 때), 과일(사과, 유자), 생선, 채소(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돌래떡 등이 있다. 메를 5그릇 올리는 것은 신위(神位)가 5임을 말해 준다. 그것은 ‘송씨할망, 삼승할망, 마누라, 세경할망, 젯도’이다.

넙은드르마을 포제

현용필은 마을 포제에는 재건부락 시절부터 축문도 다 쓰고 계속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4·3사건으로 지내기 어려웠던 포제는 넙은드르마을이 재건되자 1955년부터 다시 포제를 올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대축을 섰다. 판관을 지낸 고경준이란 분이 축문을 지어줘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사태 후 얼마간은 집마다 쌀을 조금씩 내놓아 자금을 마련하고 그릇도 제관들이 내놓아서 지냈다. 대부분의 마을들은 1년에 한 번 지내는데, 인근의 해안동은 특이하게도 두 번 지낸다. 현재 넙은드르에서는 마을회관 앞의 게이트볼장 안에 포제단을 정해 놓고서 제를 지낸다. 2007년 정해년 포제의 경우 2월 11일(음력 12월 24일) 일요일 오전에 마을 총회를 열어 제관들을 선출했고, 22일에 포제를 지냈다.

마을제와 관련해서는 『노형동지』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이는 거의 현용필이 제공한 자료를 활용한 것이다. 다음에 옮겨둔다.

마을제 이름은 포제라 한다. 때문에 신명은 포신지위가 된다. 제일 1주일 전에 마을 총회를 열어 제관을 선출하고 동네 역원들도 개선한다.

제관은 12제관으로 되어 있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집례, 대축, 찬자, 알자, 봉향, 봉로, 봉작, 전작, 사준, 전사관, 그 외로 예비 제관을 둔다. 이는 만일에 정해진 제관들이 제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일 즉, 집에 상이 난다거나 몸이 불편하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제관으로서의 자격이 없으므로 이 때 대신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예차 헌관(예비 헌관), 또는 도예차(집례 이하의 경우)라 한다. 제관이 정해지고 입제일 3일 전에는 제청 집에 모여 정성을 지낸다. 정성 기간 동안의 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날: 제청에 들어가면 집사방을 잡는다. 이것은 제관들 명단을 쓴다는 의미이다. 집례가 대축에게 집사방을 잡으라고 지시하면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으로부터 시작하여 12제관의 명단을 써넣는 것을 말한다. 제관으로 정해진 분들에게 유고가 없으면 다음에는 ‘제향비’를 거둔다. 이 돈은 이미 향회를 열 때 결정된다. 이 돈은 옛날부터 마을의 안녕을 위하고 정성하는 것이라 하여 다른 돈보다 빨리 낸다. 옛날에는 ‘동네지’가 그 돈을 받으러 다녔다. 이 사람은 포제 준비를 위해서 마을의 모든 심부름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4-5년 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통장, 반장이 이 일을 대신한다. 그래서 그것을 연가열명(煙家列名)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호호마다 누가 얼마를 냈다는 것을 적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날 마을 입구의 모든 길에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제장소를 정하여 청소도 한다. 제장소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방위를 보아 깨끗한 빈 밭으로 정한다.

▶둘째 날: 희생을 봉헌한다. 이것은 돼지를 잡아 물을 끓여 칼로 털을 하얗게 곱게 깎아내고, 내복만 곱게 빼내어 보관하는 것이다. 이 내복은 제를 넘기기 전에는 누구라도 손을 대지 못한다. 제가 끝나면 초헌관의 지시를 받아 삶아서 음복을 하게 된다. 제단에 모실 때는 내장만 곱게 빼어낸 채 큰 대그릇에 넣어 자우를 살펴 모신다. 이 말은 아무렇게나 놔두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보아 머리는 동쪽으로 놓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앉아 볼 때 돼지 머리가 오른쪽으로 가도록 놓는 것이며 이것은 제사 지낼 때 어동육서의 규칙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희생을 봉할 때는 제관들이 모두 유건을 쓰고 제복을 입어 가지고 방에 죽 둘러앉아 있고, 집례가 대축에게 축을 쓰라 한다. 이렇게 하는 과정을 어릴 적 소집사에서부터 올라가니 모든 제순에 익숙해 있어 특별한 예행연습은 없다. 집례는 홀기를 부르니까 홀기를 쓰게 된다. 대축은 미리 제관으로 선출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고할 것은 연습하여 제청에 입소한다. 집례는 포제의 모든 일을 관할하는 의무를 맡고 있다. 헌관을 제외한 나머지를 집사라고 하는데 이들의 통솔자인 셈이다.

▶ 셋째 날: 곧 제일인 상정일이다. 자시 전에 현장으로 제물과 제상을 운반해 가서 진설하고 자시가 되면 제를 지낸다. 그 순서는 집례가 부르는 홀기에 따라 전폐례, 초헌례, 독축, 아헌례, 종헌례, 음복, 철변두, 망료의 순으로 순수 유교식이다. 제물로는 폐백으로 명주를 댓자하고, 백지 7장, 도량 백반 2그릇, 서직 조밥 2그릇, 희생(돼지 전 마리), 포 소고기 1근, 과일로는 대추, 곶감, 비자, 유자, 밤의 5종류, 채소로는 미나리, 무채, 어숙으로는 명태, 생선, 형염 등을 올린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모혈이다. 이것은 돼지의 머리쪽에 있는 털을 조금 뽑아 작은 그릇에 넣고 거기에 돼지 염통피를 조금 넣은 것이다. 이것을 바침으로써 돼지의 털 하나까지 빼놓지 않고 모두 바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랑굿마을(월랑마을 1) 포제

다랑굿마을의 포제는 음력 정월 들어 처음 맞는 정(丁)일을 택해서 했다. 한 해도 중단되지 않고 계속 거행되어 온 것으로 강덕환은 알고 있다. 포제단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터진 방(方)으로 밭 하나를 빌려서 제를 지내오다가, 1970년대 후반 마을회관이 지어진 이후로는 줄곧 마을회관에서 치렀다. 그의 집은 마을회관 바로 옆이어서 음식을 마련하는 집, 즉 포제청이 된 경우가 많았다. 포제를 앞두고 목욕재계를 하고, 금줄을 달았으며, 달거리하는 여자를 못 드나들게 하였다. 그의 집이 포제청이 될 때는 어른들이 그의 형제들에게 조심해서 다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1980년에는 그의 막내동생이 마을회관 옥상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때 제관을 맡았다가 부정할 수 있다고 해서 그만두기도 했다.

월랑마을

마을제의 이름은 포제라 한다. 신명(神名)은 포신지신위(酺神之神位)로 되어 있고 제일은 음력 정월 상정일(上丁日) 자시에 행한다. 그러나 마을이 깨끗하지 못하면 곧 중정일(中丁日)에 행하기도 한다. 3일 전에 마을 총회를 열어 제관을 선출하고 마을에 1년 결산 보고도 한다. 또한 제향비 거출 계획도 세운다. 예부터 대촌이 되다 보니 13제관을 선출한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전사관, 집례, 대축, 찬자, 알자, 봉향, 봉로, 전작, 사존과 만약을 대비해서 예차 헌관을 둔다. 그리고 제청(개인집)을 정하여 총회날 저녁이면 제관들은 입제를 하고 합숙을 하게 된다(현재는 마을회관을 이용하고 있음). 제를 지내는 장소는 마을 안의 밭을 이용하는데 제청에서 터진 방 쪽으로 정한다. 주로 천막을 이용했으나 옛날에는 새로 엮은 뜸을 이용하기도 했다. 마을 책임자는 총회 전에 희생으로 사용할 검은색 돼지와 포로 사용할 소고기를 미리 준비해 둔다. 그 외 물종은 전사관과 마을 책임자가 준비(구입)를 한다.

물종은 폐백(명주와 백지), 백미, 조미, 생선, 명태, 오종(밤, 대추, 비자, 곶감, 유자), 염, 미나리채, 무채, 생감주 등이다. 이렇게 준비된 물종으로 돼지는 희생을 하고 백미, 조미는 2기씩 메를 친다(중탕), 제기는 제청에서 미리 향물에 씻어 밤에 이슬을 맞힌다. 제관들은 제복(청금 유권)을 일반 가정에서 빌려 입어야 했다(현재는 제복과 제기가 준비돼 있다. 우리 마을의 제복은 박금상 씨가 몇 년 전에 희사한 것이다). 이렇게 정성들여 마을의 안녕을 비는 포신제가 끝나면 대축은 제향 경과, 결산 보고를 하고 제관과 참석자들은 음복을 하여 해산한다.

마을제가 끝나면 일반 가정에서도 택일을 하여 가정 토신제 또는 기복제를 지내기도 하고 여인들은 할망당을 찾아서 세배를 올리기도 하는데 월랑마을은 동쪽에 위치한 마깨낭당을 이용했었다.

원노형

마을제 이름은 처음에는 포제로 하다가 지금은 이사제로 하고 있다. 신명은 ‘이사지신’이다. 이 마을에는 4·3사건 전에는 50여 호 정도가 있었는데 사건 후는 10여 호가 모여 이루어졌다. 4·3사건으로 남자들이 많이 죽었으므로 포제는 주로 여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나이 많은 남자들이래야 한학을 하지 않으신 분이라 포제를 무리없이 치르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이웃 마을인 월랑의 도움을 받아 포제를 지내왔다. 제관도 다른 마을처럼 많은 수로 구성할 수 없어 제관 1, 집사 1로 행하여졌는데, 원노형마을이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지금은 제관 수도 늘었고 제물은 큰 마을과 다름없이 준비한다. 신도시 개발 초기에는 외부에서 입주하신 분들이 참여를 잘 하지 않아 지체하려고도 하였으나 어른들의 만류로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지금은 마을제가 마을 주민들을 결속하는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제일이 가까워 오면 총회를 열어 제청을 마련한다. 제청은 10여 호가 돌아가면서 맡아 왔고 지금은 다세대 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이들을 맡아 주기도 하려 했으나 마을 노인네들이 만류하여 그냥 존속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제물은 쌀메, 조메를 각각 2그릇씩 올리며 구분하지 않는다. 과일은 밤, 대추, 곶감, 유자, 비자의 5종이며 생선 1, 쇠고기 반 근 정도, 희생으로는 돼지 머리를 올린다. 4·3사건 후에 수탉을 올린 경우가 있다.

정성 기간으로는 3일이며 이 기간 동안에 제청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제물과 희사금을 내기도 하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제청에서는 음식을 드린다. 제복은 마을에서 빌어다 쓰고 제기는 제청 집에서 댄다. 금줄은 제청에만 친다. 옛날에는 마을 입구에 쳤으나 지금은 시가지가 넓어서 그럴 수 없다. 제는 방위를 봐서 공터를 정하여 치른다. 정해진 포제단이 없다. 이 마을에서 포제는 이웃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하게 하는 기능을 갖는다. 평소에는 인사도 하지 못하는 사이가 정성 기간과 파제 후 음복을 하면서 인사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정존마을

마을제 이름은 이사제(里社祭)이다. 신명(神名)은 이사지신(里社之神)이고 제는 당일제 또는 후일제를 치른다. 이것은 그 날의 날짜를 봐서 몇 시경에 정일이 드는가에 따라 정한다. 제단은 정해진 곳이 없다. 제장은 마을 중심지에서 동서가 막히면 남 혹은 북을, 남북이 막히면 동서를 택한다. 그 중에서도 금년이 서쪽이 트이니 마을 서쪽 집을 빌어 제청으로 삼고 그 쪽 빈 밭에서 제를 봉했다. 제장으로 정해진 밭의 주위 백 보 내에 산이 있으면 안 된다. 정성 기간은 3일이며 제관은 깨끗한 집을 빌어 합숙을 한다. 제관은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집례, 알자, 대축, 찬자, 봉로, 봉향, 봉작, 사준, 전사관의 12제관이며 제관으로 정해지면 이들은 말고기, 개고기 등을 먹는 것을 금한다. 제복은 마을에서 만들어서 마을 재무 집에 보관하고 있다. 제물로는 산메를 올린다. 메는 도(稻), 량(梁), 서(黍), 직(稷)이며 희생은 돼지 한 마리, 폐백, 과일은 유자 1개만 올린다. 제주는 생감주, 채소류는 미나리, 무채, 소고기 1근과 명태 마른 것 등을 올린다. 제의 순서는 다른 마을과 같다. 음복은 그 당시 참석한 사람 전부와 제관들이 행하게 되며 남은 것은 제관들에게 나누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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