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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고 절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2054
한자 安民庫節目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 40[일도 2동 996-1] 제주도 민속 자연사 박물관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백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적류
저자 윤신흥|이형도|이갑룡|길현범
권책 1책[30쪽]
규격 가로 22cm|세로 23cm
문화재 지정 번호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 자료 제12호

[정의]

조선 후기 제주도 정의현의 안민고 운영 세칙을 기록한 시행령.

[개설]

제주의 정의현은 군량 밑천이 부족하고, 땅이 척박하여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가을에 백성들이 곤궁하며, 밀납과 표고가 산출되지 않아 진상을 하는데 그 구입비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정의현의 안민고는 조선 후기 지방 관아에 설치되었던 민고의 하나로, 이러한 정의현의 재정 부족분 충당과 선격(船格), 포작(鮑作), 봉연군(烽煙軍), 목자(牧子) 등 고역(苦役) 종사자에 대한 구휼을 목적으로만들어진 임시 재정 기구이며다.

『안민고 절목』은 1758년(영조 34) 10월 정의 현감 윤신흥(尹莘興)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후 1763년 1월과 1787년(정조 11) 2월 1836년(헌종 2) 7월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안민고 운영을 위한 운영 세칙을 기록한 일종의 시행령이다.

[저자]

『안민고 절목』을 정하여 시행하도록 한 것은 당시 정의현을 다스리던 정의 현감이다. 『안민고 절목』을 처음 제정한 윤신흥 등 정의 현감 4인의 행적은 자세하지 않다. 다만, 19세기 중반 제주 목사 이원조가 편찬한『탐라지초본』정의현 관안조에 이들이 도임한 연월과 체임된 연월이 기록되어 있다.

현감 윤신흥은 1756년 11월에 도임하여 1758년 10월에 교체되어 떠났다. 현감 이형도(李亨道)는 1762년 11월에 도임하여 1763년 9월에 교체되어 떠났다. 현감 이갑룡(李甲龍)은 1784년 8월에 도임하여 1787년 7월에 교체되어 떠났다. 현감 길현범(吉顯範)은 1835년 6월에 도임하여 1837년 2월에 교체되어 떠났다.

[편찬/간행 경위]

정의현의 재정 부족분 충당과 고역 종사자에 대한 부담 완화를 목적으로만들어졌다.

[형태/서지]

1책 30쪽의 필사본으로 가로 22cm, 세로 23㎝이다.

[구성/내용]

서언과 운영 규칙을 기록한 세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언에서는 여름의 군량 부족, 가을 백성들의 곤궁함, 밀납과 표고의 진상 문제 등 안민고 설치 목적을 밝히고 이에 대한 운영 기금으로 제번가(除番價)와 공방(工房)의 남은 쌀과 수소 값, 쇄마가(刷馬價) 등을 이획(移劃)하여 마련한 피곡 천 석으로 안민고를 운영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운영 규칙을 기록한 세칙에서는 피곡 천 석에 대한 식리(殖利)로 취한 이자로 정의현의 재정 부족분 충당할 것과 선격, 포작, 봉연군, 목자 등 고역 종사자에 대한 구휼 내용을 아울러 기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758년 정의 현감 윤신흥이 곡식 500여 석을 비축하여 처음 만든 이래 1763년(영조39)과 1787년, 1836년 3차례에 걸쳐 각각 절목이 추가되어 당시의 사회 변동 상황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제주에서 운영된 민고의 실체를 증명해 주는 역사적 자료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