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최익현 초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2047
한자 崔益鉉肖像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주 동로 17[건입동 26] 국립 제주 박물관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백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초상화
작가 채용신
서체/기법 비단에 채색
소유자 국립중앙박물관
관리자 국립제주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1510호

[정의]

1905년 채용신이 제주에 유배되었던 구한말 우국지사 면암 최익현을 그린 초상화.

[개설]

최익현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으로 1833년(순조 33)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하였다.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우고 1856년(철종 6) 명경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868년(고종 5)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當百錢) 발행에 따르는 재정의 파탄 등을 들어 흥선 대원군의 실정(失政)을 상소하여 관직을 삭탈 당하고, 1873년 12월에서 1875년 3월까지 제주에 유배되었다.

이후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일 의병 운동의 전개를 촉구하며 74세의 고령으로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순창에서 패하여 대마도에 유배, 그곳 옥사(獄舍)에서 세상을 떠났다. 1962년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최익현 초상」은 2007년 2월 27일 보물 제1510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최익현 초상」은 세로 51.5cm, 가로 41.5 cm의 비단에 채색이다. 심의(深衣)를 입고 털모자를 쓴 모습의 반신 초상화로, 배경을 담묵으로 처리하였다.

그림 우측 상단과 좌측 하단에 각각 ‘면암 최 선생 칠십사 세 상 모관본(勉庵崔先生七十四歲像 毛冠本)’ ‘을사 맹춘 상한 정산 군수 채용신 도사(乙巳孟春上澣定山郡守蔡龍臣圖寫)’라 쓰여 있는데, 이를 통해 이 초상화가 1905년 초봄에 정산 군수였던 구한말 대표적인 초상화가 채용신이 74세의 최익현을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특징]

최익현이 입고 있는 심의는 유학자들이 입던 옷으로 위정척사를 주창했던 구한말 전통 유학자로서의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으며, 짐승의 털로 만든 모자인 모관(毛冠)은 노구의 몸으로 의병 활동을 했던 최익현의 기상을 잘 살려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최익현 초상화는 면암 생존 시에 그려진 유일한 작품이다. 심의를 입고 모관을 쓴 상태로 입술을 꾹 다문 채 정면을 주시하는 모습은 74세의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위정척사 사상으로 외세에 굴복하지 않았던 강인한 정신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또한 을사조약 체결 이후 관직을 버리고 우국지사와 유학자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전념하였던 채용신의 항일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