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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581
한자 人文地理
영어음역 nmunjiri
영어의미역 Human Geography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손명철

[정의]

현행 행정구역상 제주시라는 특정 장소에 존재하는 사물과 현상 중,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대상으로 지리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

[개설]

제주도 북부, 즉 한라산의 북쪽에 동서로 길게 위치하는 행정시(行政市)이다. 동·서·북쪽은 남해 바다에 면하고, 남쪽은 서귀포시에 접한다. 탐라국 시대 이래 약 2천 년 동안 제주섬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면적은 977.7㎢로 제주도 전체 면적의 52.9%를 차지한다. 이중 임야가 47.5%, 경지 28.3%, 그리고 기타 24.2%로 우리나라 평균보다 임야 면적은 적고 경지 면적은 많은 편이다. 2006년 말 현재 150,379세대, 405,819명이 거주하는데, 이는 제주도 전체 인구의 72.2%에 해당한다. 성비는 거의 균형을 이룬다. 1946년 8월 제주도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독립되면서 한라산 정상을 기준으로 북부를 북제주군, 남부를 남제주군이라 하였다. 1955년 북제주군에 소속되어 있던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고 북제주군은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졌다. 이후 북제주군이 탄생한 지 60년 만인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의 출범과 함께 북제주군이 없어지면서 제주시에 편입되었다. 2007년 10월 현재 4읍 3면 19동 414통 96리 3969반으로 구성되었다.

[위치와 영역]

북제주군을 포함한 제주시는 제주도의 북부, 곧 한라산 북사면에 위치한다. 경위도를 기준으로 한 수리적 위치상의 4극점을 보면, 동쪽 끝은 우도면 조일리(동경 126o 58' 20", 북위 33o 30' 41"), 서쪽 끝은 한경면 고산리(동경 126o 08' 43", 북위 33o 18' 28"), 남쪽 끝은 한경면 산양리(동경 126o 17' 30", 북위 33o 16' 00"), 북쪽 끝은 추자면 대서리(동경 126o 22' 10", 북위 34o 00' 00")이다. 상대적 위치를 살펴보면 남쪽으로 서귀포시와 경계를 공유하고, 북쪽으로는 남해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 남해안과 마주보고 있다. 한반도와 마주하고 있어 예부터 한반도는 물론 중국, 일본의 여러 왕조들과 문물의 교류가 활발하였다.

북제주군과 통합되기 이전 제주시의 면적은 255.5㎢로 19개 행정동과 40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었다. 행정동의 명칭은 일도1동·일도2동·이도1동·이도2동·삼도1동·삼도2동·용담1동·용담2동·건입동·화북동·삼양동·봉개동·아라동·오라동·연동·노형동·외도동·이호동·도두동이며, 이중 아라동, 봉개동, 노형동 등 3개 동의 면적이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현재 제주시 전체 면적 중 옛 북제주군의 면적은 722.3㎢이다. 이는 제주도 전체 면적의 약 40%에 해당하며, 통합 이전 제주도의 4개 시·군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중앙에 위치한 제주시 19개 동을 기준으로 관내 동쪽에는 조천읍, 구좌읍, 우도면이, 서쪽에는 애월읍, 한림읍, 한경면이, 그리고 북쪽 바다에는 추자면이 위치한다. 추자면우도면은 도서지역이다. 부속도서로는 우도,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비양도 등 6개 유인도와 차귀도, 다려도, 사수도 등 45개 무인도를 합하여 모두 51개가 있다.

[산업]

통합 이전 제주시와 북제주군은 산업구조와 토지이용, 인구구성 등 여러 측면에서 서로 특성을 달리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들 두 지역을 한데 묶어 산업을 기술하는 것보다는 분리하여 각각 서술하는 것이 지역의 고유한 성격을 보다 잘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우선 통합 이전 옛 제주시의 주요 토지이용 현황을 살펴보면, 행정구역상 시(市)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대지·공장용지·도로 등 도시적 토지이용 면적보다 임야와 농경지 같은 농촌적 토지이용 면적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농경지 23%, 목장용지 7.9%, 임야가 49.8%인데 비하여 대지 5.6%, 공장용지 0.2%, 도로 4.6% 등이다. 전국 평균에 비하여 공장용지의 비중이 특히 낮은 것은 제주도 전체적으로 2차 산업의 비중이 생산액이나 취업자 구성비에서 모두 2~3%에 불과한 산업구조를 잘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별 취업자 비중을 살펴보면 농림어업 등 1차 산업이 24.5%, 광공업 등 2차 산업이 4.3%, 그리고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사업서비스업 즉 3차 산업이 71.2%를 점유한다. 3차 산업 중에서는 특히 음식숙박업과 개인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이는 관광도시로서 제주시의 성격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옛 북제주군의 주요 토지이용 현황을 살펴보면, 경지가 약 30%, 목장용지 12.5%, 그리고 임야가 48%를 점유하고 있다. 경지를 다시 세부 항목별로 나누어 보면, 이 중 밭이 23.5%, 과수원 6.3%, 그리고 논이 0.4%로 밭이 전체 경지면적의 78%를 차지하여 전형적인 밭 농사지대임을 알 수 있다. 가구당 경지면적은 약 2.2㏊이다. 임야 중에는 국유림 23%, 공유림 12%, 그리고 나머지 65%가 사유림이다. 농산물 중에는 감귤이 가장 중요한 소득원인데 최근엔 연간 조수입이 약 3,000억원에 이른다. 그 밖에 콩, 감자, 맥주보리같은 식량작물과 마늘, 양배추, 당근 같은 채소류를 많이 재배한다. 중산간 지대의 넓은 평원에는 제동목장, 송당목장, 이시돌목장 등 대규모 목장이 분포한다. 약 7,500㏊에 초지가 조성되었으며, 여기서 1만 8천 두의 소와 7천 5백 두의 말을 사육한다. 축산업에서는 무엇보다 돼지의 비중이 큰 편이다. 돼지는 약 30만 두를 사육하여 연간 1,500억원의 조수익을 올리는데, 이는 전체 축산 소득액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수산업에 종사하는 어가 수는 약 3,200가구, 잠수(해녀) 수는 2,800명 정도인데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수산 분야의 연간 조수익은 2,300억원 정도이며, 이중 상당 부분이 넙치 양식에서 나온다. 공업은 제주도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비중이 낮은 편인데, 옛 북제주군은 제주도 평균보다는 약간 높은 비중을 보인다. 천연지하수를 이용해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소주를 생산하는 한림읍 옹포리의 한일소주, 우유와 치즈를 생산하는 한림읍 금악리의 제주낙농협동조합, 그리고 지하 300m에 있는 천연화산암반수를 이용하여 먹는 샘물을 생산하는 조천읍 교래리의 제주삼다수 등은 제주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제조업체라 할 수 있다. 제주도에 설립된 3개 농공단지 중 2개가 옛 북제주군에 입지한다. 구좌읍 행원리 농공단지는 나전칠기와 낚시줄, 텔레비전과 냉장고같은 가전제품의 부품, 골판지 상자와 컨테이너, 그리고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각종 식품과 관광토산품을 생산한다. 그리고 한림읍 금능리 농공단지에서는 주로 전기·기계 공업과 식품가공업이 활발하다. 상업활동, 특히 일상용품의 판매와 구매활동은 대부분 5일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애월읍 동귀장이 2·7일, 한경면 신창장과 조천읍 조천장, 애월읍 애월장이 3·8일, 한림읍 한림장이 4·9일, 그리고 애월읍 납읍장과 한경면 고산장, 구좌읍 세화장이 5·10일에 정기적으로 열린다. 이중 한림장세화장이 특히 규모가 크다. 이들 5일장에서는 각종 농산물과 해산물, 의류, 생활용품, 한약재 등 다양한 물품이 거래된다.

[인구]

인구 분야도 통합 이전 옛 제주시와 북제주군의 동태가 서로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이들 두 지역을 분리하여 그 특성을 기술하는 것이 인구 실체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옛 제주시의 인구는 1955년 북제주군 제주읍에서 제주시로 승격하여 분리·독립된 이후 매년 증가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1955년 시 승격 당시 5만 9천 662명이던 것이 1965년에는 8만 4천 267명으로 증가하였고, 이후 1975년 13만 5천 189명, 1985년 20만 3천 298명, 1995년 25만 5천 602명, 그리고 2005년에는 30만 4천 510명으로 제주도 전체인구의 54.5%를 점유한다. 전국 9개 도 가운데 도청이 소재한 1개 도시에 도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경우는 제주도가 유일하며, 그만큼 제주시의 인구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이러한 인구증가는 주로 사회적 이동에 기인하며, 도외보다는 도내 특히 옛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에서 유입되고 있다. 이처럼 제주시로의 지속적인 인구 유입과 여타 지역의 인구 유출은 제주도 내 인구 분포의 불균형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반면 옛 북제주군의 인구는 1980년대 초반까지는 증가하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1949년 16만 2천 623명이었던 인구가 1960년에는 10만 5천 156명으로 감소하였다. 이는 북제주군에 속하였던 제주읍이 1955년에 제주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되어 나갔기 때문이다. 이후 1966년 11만 7천 841명, 1970년 11만 2천 612명, 1975년 11만 6천 685명, 그리고 1980년에는 12만 2천 397명으로 대체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는 우리나라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으로 식생활과 의료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망률이 감소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80년 이후부터는 지속적인 감소추세가 이어진다. 1985년 11만 4천 223명, 1990년 10만 8천 839명이다가 1995년에는 9만 8천 409명으로 10만명을 밑돌게 되었다. 이러한 인구감소는 취약한 지방재정을 중앙정부의 교부금에 의존해야 하는 기초자치단체로서는 매우 불리한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교부금 액수는 지자체의 인구규모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주소 옮기기 등 대대적인 인구증가 시책에 힘입어 2000년에는 다시 10만 395명으로 증가하였다가 2005년에는 9만 7천 744명으로 다시 감소하였다. 1980년대 초반 이후의 인구 감소는 출생률 저하와 함께 농촌 인구의 대대적인 도시로의 이동, 즉 이촌향도 현상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옛 북제주군 관내 농어촌 지역을 떠난 이들은 대부분 수도권 대도시나 제주시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촌향도 현상은 비단 제주도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관광]

제주시에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관광자원이 많이 분포한다. 옛 제주시 일원에는 제주 삼성혈제주목 관아 등 신화·역사 유적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국립박물관 같이 제주의 옛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 그리고 용두암, 삼양해수욕장, 이호해수욕장 같은 해안 관광자원이 분포하고 있어 연중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또한 옛 북제주군 관내에도 산악, 산림, 동굴, 초원, 해안, 섬, 온천 등 갖가지 관광자원이 고루 분포하여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끈다. 특히 유동성이 큰 현무암이 분출하여 구좌읍 김녕리만장굴, 한림읍 협재리협재굴과 쌍룡굴 등 세계적인 용암동굴을 형성하였다. 함덕해수욕장김녕해수욕장, 그리고 곽지해수욕장협재해수욕장은 모두 청정한 수질과 하얀 패사, 옥빛 바다가 어우러져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연출한다. 부속도서 중 가장 절경을 이루는 추자도우도, 그리고 차귀도는 낚시관광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중산간 지대에서는 원시의 천연 비자림과 화산 분화구인 산굼부리가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이끈다. 최근에는 교래리 일대에 대규모 돌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제주의 자연과 생활문화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문화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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