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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산봉 개발 반대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0862
한자 猫山峰開發反對運動
영어음역 Myosanbong Gaebal Bandae Undong
영어의미역 Public Opposition against developing Myosanbong Peak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 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97년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2006년연표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김녕리 묘산봉을 중심으로 한 종합 관광 단지 조성에 반대하여 일어났던 사회 운동.

[개설]

1996년 김녕리(당시 서김녕리) 주민들은 묘산봉을 중심으로 김녕리 578번지 일대 466만 1,178㎡ 부지에 종합 관광 단지가 조성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도와 군 당국이 지역 개발을 추진하고, 라인건설이 1조 9,915억 원을 투입해 도시형 휴양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개발 예정지의 대부분인 436만㎡ 정도의 땅은 평소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었지만 군유지였다. 김녕리 주민들은 1997년 1월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구체적인 주민 참여 방안과 생존권 보장 대책을 행정 당국과 사업자에게 요구하였다.

그렇지만 묘산봉 개발 반대 운동은 2006년 사업이 승인되면서 일단락되었다.

[발단]

묘산봉을 중심으로 관광 단지가 조성된다고 전해지자 김녕리 주민들은 1997년 1월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행정 당국과 사업자에게 생존권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북제주군묘산봉 관광 지구 내 436만㎡ 정도의 군유지를 사업자인 라인건설에 매각하는 안건을 북제주군의회에 상정하였다. 대책위원회는 이에 맞서 군유지 매각 반대 청원을 의회에 제출했던 시민 단체인 제주경제정의실천연합과 연대하여 공동 생태 조사단을 구성하였다.

한편 개발 계획에 포함된 골프장 규모가 36홀에서 72홀로 확대되고, 다른 시설 계획은 뒤로 미루는 최종 이행 계획서가 1997년 2월에 제출되었다. 그러자 주민들은 5월 1일 3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마을 총회를 열었다.

총회를 통해 주민들은 “묘산봉 지구 매각은 600년 동안 이어진 생활 터전을 빼앗고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주민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일방적 매각 추진에 대해 반대하기로 결의했다.

나아가 주민들은 묘산봉에 대한 관리와 임대권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민들의 움직임에 맞서 북제주군 당국은 묘산봉 지구가 군유지이므로 주민들의 토지 매각 반대 주장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자 김녕리 주민들은 행정 당국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장, 반장의 총 사퇴를 결의하면서 대립이 심화되어 갔다.

[경과]

주민들은 군 의회에 호소하기로 했지만, 의회 의원들은 주민들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군유지 매각이 결정되는 1997년 5월 24일 아침부터 주민 40여 명이 본회의장 입구를 봉쇄하였다.

의원들은 오전 10시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려다 주민들의 실력 저지가 있자 제주경찰서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였다. 주민들은 제주경찰서 서장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들의 강제 진압 경고에도 불구하고 강경 입장을 고수하여 한때 정면 충돌 직전까지 갔으나 의장과 부의장의 설득으로 회의장 입구 봉쇄를 일단 철회했다.

그러나 의원들로부터 매각안을 부결시키겠다는 답변을 듣지 못하자, 이번에는 단상을 점거하여 경찰과 맞서다가 결국 주민 다섯 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나서야 가까스로 사태가 진압되었다.

12시에 회의를 시작한 의원들은 속성으로 묘산봉 지구 군유지 매각을 결정하였다. 그 뒤 의원들은 거칠게 항의하는 주민들을 피해 빠져나갔고, 주민들은 경찰과 대치하다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의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주민을 배제한 채 북제주군은 11월 21일 라인건설과 묘산봉 관광 지구 군유지를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는 제주도 전역에서 대규모 개발 계획이 처음으로 가시화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행정 당국은 매우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12월부터 시작된 IMF 경제 위기는 사태를 역전시켰다.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라인건설은 군유지 매입 대금 완납일을 여러 차례 연기하다가 결국 부도를 내고 말았다. 그 뒤 외자를 유치해서 사업을 계속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그 역시 실현되지 못했다.

[결과]

북제주군은 1년 만에 매매 계약을 해지하고, 1999년 3월 사업 예정자 지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 온 제주도의 큰 환경 사안이었던 묘산봉 관광 지구 개발 사업은 결국 승인이 이뤄져 공사에 들어갔다. 이로써 한반도 최대의 상록활엽수림이자 수많은 희귀 생물의 보고라는 찬사를 들었던 선흘곶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사업 지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포하는 제주고사리삼의 최대 군락지였고, 수많은 희귀 동식물의 분포 지역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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