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0841
한자 御乘生貯水池
영어음역 Eoseungsaeng Jeosuji
영어의미역 Eoseungsaeng Reservoir
이칭/별칭 한밝저수지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혜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저수지
면적 2만 6400㎡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제주 지역 유일의 상수원 저수지.

[개설]

맑고 깨끗한 어승생오름 계곡에서 형성된 물줄기를 모아 어승생저수지를 조성하였다.

[건립경위]

어승생저수지 개발은 1966년 6월 20일 제주도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도 수자원개발 기본구상도를 직접 그려 한라산 고지대 수원 개발 방안을 지시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어승생저수지가 개발된 이유는 어승생의 용출량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한국전력, 건설부, 농림부 등이 참여하였고 어승생 수원을 전력 생산에 이용할 계획이었으나 어승생의 수량은 10만 톤 정도로 30만 톤이 필요한 전력 생산에는 수량이 부족하였다.

1967년 4월 20일 착공된 어승생 수자원 개발 사업은 당시 돈으로 10억 2000만 원이라는 막대한 공사비가 투입되어 구십구곡과 어승생에서 자연유하식 도수로를 통해 2만 7000여㎡ 규모의 저수지로 용수를 끌어들여 48.17㎞에 이르는 송수관과 16개 지선을 통해 다시 공급하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어승생 수자원 개발 사업은 건설부가 주도했고 5·16 직후 전국 각지에서 검거된 폭력배 등으로 구성된 국토건설단이 도수로와 송수관 건설에 동원되기도 했다. 이 공사는 당초 5개년 계획으로 추진될 예정이었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공사 기간이 2년으로 단축되었다.

1969년 공사가 완료됨에 따라 어승생저수지에 10만 톤의 물을 채웠으나 바닥 한쪽의 붕괴로 인해 저수되었던 물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변천]

저수지 붕괴 후 서울대학교와 동경대학교 지질학자들로부터 자문을 얻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한 끝에 일본 기술진을 동원하여 암반층까지 댐 바닥을 3m 더 파내고 철근콘크리트로 보강한 후 밑바닥에 코팅비닐(PVC)을 깔아 누수를 막았다.

이에 따라 공사비도 12억 원으로 늘어나는 우여곡절 끝에 1971년 12월 16일 어승생저수지가 완공되었다. 완공 후 박정희 대통령은 이 저수지를 넓고 크다는 뜻으로 한밝저수지라 이름 붙였으나 사람들은 어승생저수지라 부르고 있다.

어승생 수자원 개발 사업은 계곡에 둑을 쌓아 수원을 모으는 취수언 시설, 취수언에서 저수지까지 물을 공급하기 위한 도수로 공사, 2만 6400㎡ 면적에 10만 6000톤의 물을 채울 수 있는 저수지 댐 공사, 저수지에서 각 지선으로 연결하기 위한 48㎞의 송수관로 공사, 226㎞에 이르는 지선관로 공사로 나누어 추진되었다.

[현황]

어승생저수지제주시 해안동 어승생오름 북서쪽에 위치하며 중산간 지대의 수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1일 평균 1만 3000톤의 용수를 공급하던 어승생저수지는 지하수 개발 등으로 물 사정이 좋아지면서 현재 8개 마을 60개 목장에 1일 평균 8,682톤의 물을 공급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