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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0700
한자 杏源環海長城
영어음역 Haengwon Hwanhaejangseong
영어의미역 Haengwon Hwanhaejang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집필자 한금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8년 1월 7일연표보기 - 행원환해장성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9-7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행원환해장성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재지정
성격 방어 유적
건립시기/연도 고려 시대
길이 310m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 있는 적선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바닷가를 돌아가며 돌담으로 쌓았던 성.

[개설]

제주도는 지형상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항구가 드물기 때문에 환해장성을 쌓아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김상헌『남사록(南槎錄)』에 “바닷가 일대에는 또 돌로 성을 쌓았는데, 잇따라 이어지며 끊어지지 아니한다. 섬을 돌아가며 다 그러하다. 이것은 탐라 때 쌓은 만리장성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건립경위]

환해장성의 건립 경위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고려 조정에서 삼별초의 제주 진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이 주류를 이룬다. 즉 1270년(원종 11)에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삼고 조정에 항거하자, 결국 제주도로 들어올 것이라는 판단 하에 군사를 보내 성을 쌓아 삼별초의 제주도 점거를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때 영암부사 김수와 장군 고여림을 군사와 함께 제주도로 보내어 축성, 방어하게 했다. 그러나 이들이 삼별초와의 싸움에 패배한 이후에는 삼별초가 관군을 방어하기 위해 환해장성을 계속 쌓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환해장성은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도 왜구의 잦은 침범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증축되었으며, 1845년(헌종 11)에는 권직 제주목사가 제주도민을 다수 동원하여 대대적인 환해장성 증축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남아 있는 환해장성의 흔적들은 당시 보수, 증축했던 자취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형태]

제주 돌담을 이용하여 바닷가를 둘러쌓고 있다.

[현황]

환해장성은 해안 도로의 건설에 따라 거의 허물어졌으나 1998년 1월 7일 총계 5,120m가 제주도 지정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제주도 지정기념물 제49-1호에서 9호까지 총 아홉 군데의 환해장성이 지정되었고, 북제주군 관내에는 49-4호에서 8호까지 5곳의 환해장성이 있다. 그중 행원환해장성은 310m가 1998년 1월 7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9-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환해장성은 왜구의 침범을 방어했던 역사적 기념물로서 그 보존 의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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