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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672
한자 禾北碑石距離
영어음역 Hwabuk Biseok Geori
영어의미역 Hwabuk Stone Monument Street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도로와 교량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 3957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영봉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9월 9일연표보기 - 화북비석거리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0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화북비석거리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재지정
문화재 지정번호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성격 비석 군락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비석 군락.

[명칭유래]

제주도에는 역사가 오랜 마을 중심지에 지위가 높은 관리나 마을과 관련된 선비들의 치적을 기념하는 비가 많이 있는데, 이러한 거리를 흔히 비석거리라고 부른다. 화북비석거리화북동에 많은 비석이 세워진 거리라는 데서 유래한다.

[건립경위]

제주와 육지를 잇는 첫 관문으로 새로 부임해 오는 제주목사나 제주판관, 조방장 등의 많은 관리들이 이곳을 거쳐 갔었는데, 이러한 제주목사나 제주판관 등 지방 관리들의 부임 또는 이임시 이들의 공적과 석별의 뜻을 기리는 의미에서 비를 세워 놓았다.

[변천]

원래 화북성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선정비 등을 화북 포구로 모아 세웠다가 다시 화북동사무소 500미터 서쪽으로 옮겼다. 이후 도로 구획 정리를 하면서 현재 위치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 3957번지 별도천도로 변으로 옮겼다.

[현황]

13기의 비석이 남아 있는데, 양 기둥을 세운 채 그 안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형태와 단순한 직사각형 비몸돌로만 이루어진 형태, 모서리 양끝을 둥글게 처리한 형태 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비의 주인공은 제주목사를 지낸 윤구동·이원달·이현공·백희수·구재룡·장인식·임헌대, 제주찰리사를 지낸 이규원, 제주판관을 지낸 고경준 등으로 각 인물을 추모하고 그들이 선정을 베풀었음을 기리는 뜻을 담고 있다.

비문에는 제주를 떠나는 관리들이 자신의 공적을 치장하고 과시하려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러한 비는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아 조선 후기에 더욱 성행하였다. 13기의 비들은 건립된 시기가 각기 다른데, 비석 일부가 파손되고 마멸되어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1976년 9월 9일 제주도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별도천의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현고등학교 정류소에서 내려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900m 정도 내려가면 길 왼편에 13개의 비석을 만날 수 있다. 화북비석거리에 있는 13기의 비석은 다음과 같다.

목사윤공구동청덕선정비(牧使尹公久東淸德善政碑)

목사이공원달휼민선정비(牧使李公源達恤民善政碑)

목사이공현공휼민선정비(牧使李公玄功恤民善政碑)

목사백공희수휼민선정비(牧使白公希洙恤民善政碑)

목사구공재룡거사비(牧使具公載龍去思碑)

목사홍공규거사비(牧使洪公圭去思碑)

목사심상연청덕비(牧使沈相演淸德碑)

목사장공인식휼민선정비(牧使張公寅植恤民善政碑)

목사임공헌대거사비(牧使任公憲大去思碑)

찰리사상공규원청덕비(察里使相公奎遠淸德碑)

판관고공경준거사비(判官高公景晙去思碑)

조방장홍공재욱거사비(助防將洪公在昱去思碑)

□□□불망비(□□□不忘碑)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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