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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리 유적 출토 첨두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343
한자 高山里遺蹟出土尖頭器
영어음역 cheomdugi
영어의미역 point
이칭/별칭 고산리 유적 출토 찌르개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강창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석기|사냥 도구
제작시기/일시 신석기시대 초기[11,000~9,000B.P.]
제작지역 제주도 고산리
재질 석재
길이 5~12㎝
너비 2.5~4㎝[중간]
소장처 국립제주박물관 지도보기
소장처 주소 국립제주박물관
소유자 국립제주박물관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사냥 도구.

[개설]

첨두기는 비교적 대형 동물을 찌르기 위해 선단부과 측연부에 날을 만든 근거리용 사냥 도구이다.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시대의 첨두기는 소재(type), 제작 과정(debitage), 잔손질 수법(technique de retouche)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박편 첨두기와 양면 가공 첨두기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서 확인되는 후기 구석기 첨두기의 형식은 슴베 찌르개, 양면 조정 찌르개, 세석인 기법의 조합식 추형 찌르개가 있다. 찌르개는 슴베를 기본으로 하고 슴베 부위가 만곡되면서 경부를 지니고 있다. 아메리카에서 나오는 클로비스(Clovis) 찌르개처럼 기부 제작을 위해 중앙에 홈을 제작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나라의 후기 구석기를 대표하는 찌르개는 슴베 찌르개이다. 이는 재질에 관계없이 선단부를 기점으로 아래로 갈수록 바깥쪽으로 기부까지 확장되며 끝을 뾰족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기부는 자루와 결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그 자체로서 도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형태]

제주도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첨두기의 비율은 전체 성형 석기 중에서 5% 미만으로 점유율이 비교적 낮다. 고산리 첨두기는 모두 양면 박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로 볼 때, 대체로 고산리 첨두기는 선단부와 양측록에 잔손질을 하여 2차 가공을 했고, 길이는 대부분 5㎝ 이상 된다. 형태적으로는 길이와 폭의 비가 3:1이상이다.

신부(身部) 횡단면은 대부분 렌즈형과 능형이다. 평면 형태는 크게 유엽형(Ⅰ식)·목엽형(Ⅱ식)·타원형(Ⅲ식)·능형(Ⅳ식)·삼각형(Ⅴ식)·유설형(Ⅵ식)·결입형(Ⅶ식)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유엽형은 동북아시아 후기 구석기 최말기 전통을 갖고 출발하는 고산리 문화의 1기(11,000-10,000B.P.)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석기 조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유설형은 석촉의 제작 방식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결입형은 양면 석기의 2차 가공 수법이 존재하면서도 퇴화된 대표적인 형식이다. 삼각형은 양면 가공의 석촉과 동일한 수법으로 가공된 소형화된 주형(舟形) 석핵(石核)의 용도로 활용되었다.

[특징]

첨두기는 전형적인 수렵용 첨두기인 유엽형, 목엽형에서 어로와 수렵에 병용되는 혼합형 첨두기인 삼각형, 결입형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유물의 공반 상황은 확실하지 않으나, 유엽형·목엽형·유설형→타원형·능형→삼각형·결입형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마지막 단계의 첨두기는 고산리 문화의 2기(10,000-9,000B.P.)까지 잔존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의와 평가]

고산리 문화는 발달된 수렵 중심의 생업 체제를 유지한 집단의 문화이다. 이는 동북아시아 후기 구석기 최말기 세석인 문화의 전통 속에서, 각종 박편 양면 가공의 첨두기와 석촉을 사용하고, 저화도의 식물성 섬유질 토기인 고산리식 토기를 제작한 한국 초기 신석기 문화의 실체를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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