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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순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324
한자 蔡順秉
영어음역 Chae Sunby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동 1358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강순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학생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동 1358
성별
생년 1904년(고종 41)연표보기
몰년 1922년연표보기
본관 평강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평강(平康). 아버지는 채수용(蔡洙鎔)이다. 채수용은 1926년 제주공립농업학교 동맹 휴학 때 장용견(張容堅)·홍순녕(洪淳寧)과 함께 수습 실행위원으로 뽑혀 문제를 해결하였다.

[활동사항]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 서울 안국동에 있는 박태병 집에서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김종현(金宗鉉), 전라남도 함평 출신의 최강윤(崔康潤) 등과 함께 하숙하였다.

1919년 3월 4일 밤 하숙방에서 “내일 오전 8시 30분 남대문역 앞에서 제2차 독립 만세 운동이 개최되니 태극기를 가지고 나오라”는 격문 400여 매를 만들어 동지 3명과 함께 중학동을 비롯하여 인근 각 동에 배포하였다. 1919년 3월 5일 남대문역 앞에 모인 수백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조선 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시위 행진을 벌이다가 매일신보사 앞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자 항소하였고,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미결 기간을 포함하여 1년 3개월 옥고를 치렀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20년 5월 14일 가출옥하여 전라남도 강진에 사는 양부 채수강(蔡洙康) 집에서 휴양하게 되었다. 1922년 학업을 계속하려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요시찰인으로 지목되어 늘 일본 경시청의 감시를 받았으며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요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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