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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143
한자 濟州中央聖堂
영어음역 Jeju Jungang Seongdang
영어의미역 Jeju Jungang Catholic Church
이칭/별칭 제주 주교좌 중앙 본당,제주 중앙 본당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114[관덕로8길 14]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현혜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회
설립연도/일시 1899년 4월 22일연표보기
설립자 민 아우구스티노 주교
전화 064-753-2274[사제관]|064-753-2273[수녀원]|064-753-2271[사무실]
팩스 064-756-5533
홈페이지 제주중앙성당(http://www.jejucath.org)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 소속 교회.

[개설]

제주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알려진 것은 1801년 정난주(마리아, 아명 정명련)가 제주 대정현으로 유배되면서부터이다. 1845년에는 김대건(안드레아) 성인이 제주 앞바다에 표착하였다. 1858년에는 함덕 출신의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이 홍콩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전교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김기량은 이후 육지를 오가며 성사를 받았고, ‘제주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여 제주 신앙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김기량은 1866년 체포되어 경상도 통영에서 순교하였다. 당시 그로부터 교리를 배워 예비 신자가 된 김이라는 사람은 박해를 피해 살아났으나 1899년에 사망하였다.

제주 지역에 복음이 다시 전파된 것은 제주 중문 색달리 출신인 양용항(베드로)과 이 라우렌시오가 육지를 왕래하다가 천주교 신앙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1898년 4월경에 세례를 받고 제주로 돌아와 신 아우구스티노와 바오로 형제, 김생원 등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설립목적]

1898년 다시 제주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고 전교 활동이 일어나자 제8대 조선교구장 민 아우구스티노(G. Mutel, 閔德孝) 주교가 제주본당의 설립과 성직자 파견을 결심하게 되었다.

[변천]

제주중앙성당은 제주교구 최초의 본당으로 1899년 4월 22일에 설립되었다. 수원 갓등이 본당(현 왕림 본당)에 재임하던 배 카를로(C. Peynet) 신부와 김원영(아우구스티노) 새 신부가 제주에 임명되어 5월 26일 제주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6월 14일 당시 제주읍 한짓골, 즉 대로동(大路洞)[현 제주시 삼도2동 108번지]에 거처를 마련하고 전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900년 5월에 배 카를로 신부가 전라도로 전임되었다. 구 마르첼리노(M. Lacrouts, 具瑪瑟) 신부가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6월 12일에는 보좌 김원영 신부가 정의군으로 가서 ‘한논(大沓) 본당(현 서귀포시 호근동)을 설립하였다. 이것이 제주 본당의 첫 번째 자본당이었다.

1911년 4월 8일 대구교구가 설정될 당시 제주 지역의 총 신자수는 모두 4백 여 명이었고, 예비 신자수는 1,500여 명, 신성여학교 학생 수는 60명이었다. 1937년 4월 13일 광주교구가 설정되면서 본당은 그 소속 본당이 되었다. 일제 말기에 들어서면서 본당은 총독부의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41년 10월에는 본당의 손 파트리치오 신부와 서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서귀포 본당의 나 토마스(T. D. Ryan 羅) 신부 및 몇몇 신자들과 같이 일제 총독부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광주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성당은 일본군의 야전 병원으로, 부속 건물은 장교 숙소로 징발되었다. 본당 신자들은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후 목포 산정동 본당에 재임(1943~1944년)하던 박문규(朴文奎)(미카엘) 신부가 가끔 제주를 방문하여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었다. 박문교 신부는 1944년 여름부터 제주 본당의 임시 주임으로 임명되어 1945년 5월까지 제주에 거처하면서 신자들을 돌보았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제주에 투옥되어 있던 손 파트리치오 신부와 서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석방되었고, 빼앗겼던 성당과 건물도 되찾게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은 제주 본당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성당은 피난 신자들이 모여들면서 8월에 증축하였다. 다음 해 2월에는 서울의 소신학교(성신중학교)와 대신학교가 본당 구내에 있는 신성여자중학교 교실을 이용하여 피난 학교를 개교하였다가 5월에 부산으로 떠났다. 또한 전쟁 기간 중 신창 본당과 한림 본당 등이 생겼고, 레지오 마리에 운동이 도입되었다. 제주 본당은 전쟁을 겪으면서 크게 성장하였으며, 이는 곧 제주 지역 교회의 성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교세의 증가와 지역 개발은 본당의 분할로 이어져 1967년 세 번째 자본당인 동문 본당이 분리되었고 본당의 이름이 제주 중앙 본당으로 개칭되었다.

1971년 6월 28일(국내 발표 7월 14일) 제주 감목 구는 교세가 확장되어 ‘제주 지목구’로 설정되었고, 하롤드 대주교가 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결과 제주 중앙 본당은 주교좌 본당으로 설정되었다. 1977년 3월 21일(국내 발표 4월 23일) 제주 지목구가 정식 교구로 승격되고 초대 교구장에 박정일(미카엘) 신부가 착좌하였다. 같은 해 6월 30일에는 다섯 번째 자본당인 서문 본당이 분리 신설되었다. 그리고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주교좌 대성당이 1997년 기공식을 갖고 2000년도에 봉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활동사항]

1903년 여학당을 설립하였고, 이를 토대로 1909년 10월 18일 신성여학교를 설립하였다.

[현황]

현재 제주중앙성당의 주임 신부는 임문철(시몬), 보좌 신부는 이찬홍(야고보)이다. 제주 중앙 본당의 관할 구역은 제주시 삼도2동 전역, 건입동, 일도1동, 이도1동 일부 지역이다. 이외에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레지오 마리에, 울뜨레야, 학생회, 청년회, 성지회, 세실리아 성가대, 안나회, 엔젤회, 매리지 엔카운터, 연도회, 그레고리오 성가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경로봉사회, 새 신자 돌봄회, 청소년 후원회, 경조사 봉사회, 성체회, 성도친교회, 성전 관리회, 풍물놀이단 등이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제주중앙성당은 제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교회이며, 자본당의 근원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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