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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628
한자 李在守
영어음역 Yi Jaes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란 주모자
성별
생년 1877년(고종 14)연표보기
몰년 1901년(고종 38)연표보기
본관 고부(高阜)

[정의]

1901년 제주민란(일명 이재수의 난, 신축민란, 제주교난)의 주모자.

[가계]

본관은 고부(高阜). 아버지는 이시준(李時俊)이며 어머니는 송씨이다.

[활동사항]

본래 대정군의 관노였으나 갑오개혁 이후 노비제가 폐지되자 관아의 급사이면서 향청의 우두머리인 오대현(吳大鉉)의 하예(下隸)가 되었다. 칼과 활 등 무예에도 뛰어났다.

1901년 5월 봉세관(封稅官)의 과중한 세금과 이와 결탁한 천주교도의 작폐가 심각하여 대정읍 인성리에서 주민과 천주교도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자 민군(民軍)의 주장(主將)이 되어 민란을 지휘하였다.

민란은 제주목·대정현·정의현으로 확산되어 제주성을 둘러싼 민군과 천주교도 사이에 공방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부녀자들도 천주교도를 반대하는 궐기를 일으켰으며, 제주성 밖에 숨어 있던 천주교도들이 민군측에 의하여 살해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조정은 진압군을 파견하게 되었고, 프랑스 함대와 일본 군함까지 출동하였다. 민란 발생 당시 이재수는 인성리 이강(里綱)으로 있었으며 민란의 2차 봉기 때 오대현이 붙잡히자 뒤를 이어 서진장(西陳將)으로서 비타협적 무력 투쟁을 강행하였다.

민란은 정부군에 의하여 진압되었고, 이재수는 6월 13일 정부군에 의해 서울로 압송되어 10월 9일 처형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1년 대정 유림이 대정삼의사비를 세웠으며, 1995년 다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추사관(秋史館) 입구 쪽으로 옮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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