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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613
한자 李源達恤民善政碑
영어음역 Yi Wondal Hyulmin Seonjeongbi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Yi Wondal
분야 종교/유교,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3957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순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휼민선정비(恤民善政碑)
건립시기/일시 1840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이원달(李遠達)
재질 제줏돌
높이 90㎝
너비 45㎝[위]|37㎝[아래]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3957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이원달(李遠達)의 공덕을 기리는 비.

[개설]

이원달은 문신이며,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37년(헌종 3) 11월에 부임하였다가 1839년(헌종 5)에 사직하였다. 재임 중 평역미(平役米) 4말에 4되를 감해주었고, 경민편(警民篇)을 인출(印出)하여 각 동리(洞里)에 나누어 주었다. 또한 곡식이 기재된 장부를 샅샅이 조사하여 환곡의 폐단을 막았으며, 생마(生麻), 어물(魚物)의 미봉자(未捧者)를 혁파하는 등 정사에 밝았다.

[건립경위]

이원달이 제주목사로 재임하던 중에 표류(漂流)를 가장하기 위하여 풍랑을 무릅쓰고 배를 띄웠다가 익사자(溺死者)들이 생기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전에도 제주 사람이었던 고한록(高漢禄)이 표류하였다가 중국을 거쳐 귀환(歸還)한 일이 있었다.

1838년에 고한록이 또다시 표류를 기도했는데, 동행한 사람 중에 익사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이에 이원달이 계청(啓請)하여 고한록을 처참(処斬)하고 무모한 표류자가 재발(再發)하지 않도록 경고하였다. 이원달 휼민선정비는 이러한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화북리민(禾北里民)이 세웠다.

[형태]

비의 크기는 높이 90㎝, 너비는 위쪽이 45㎝, 아래쪽이 37㎝, 두께는 위쪽이 15㎝, 아래쪽이 14㎝이다. 가첨석이 없는 제줏돌 비석이다.

[금석문]

앞면에는 “목사이공원달휼민선정비(牧使李公遠達恤民善政碑)”라 쓰여 있고, 뒷면에는 “도광 이십년 오월일 별력리(道光 二十年 五月日 別力里)”라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1840년 5월에 화북리민이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현황]

비문이 조금씩 마멸되고 있어 ‘달(達)’자는 거의 알아볼 수 없고 앞면 한쪽이 부분 파손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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