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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603
한자 李約東先生漢拏山神壇紀蹟碑
영어음역 Yi Yakdong Seonsaeng Hallasan Sindan Gijeokbi
영어의미역 Memorial Monument of Yi Yakdong at the Hallasan Mountain God Altar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 357-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순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적비(紀蹟碑)
건립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이약동(李約東)
높이 180㎝
너비 70.8㎝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 357-1 지도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조선 전기 제주목사 이약동의 한라산신단 기적비.

[개설]

이약동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민폐를 근절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경사(經史)에 통달하였고, 여러 지역에 목민관을 지냈으나 청렴함으로 일관하였다.

[건립경위]

제주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과 이약동 선생의 후손들이 공동으로 이약동 선생의 선정과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형태]

비신(碑身)의 너비는 70.8㎝이고 두께는 41㎝이며 전체 높이는 180㎝이다.

[금석문]

비 앞쪽에는 “목사 이약동 선생 한라산신단 기적비(牧使李約東先生 漢拏山神壇紀蹟碑)”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산천단은 한라산신에게 제사 지내던 곳으로 조선 성종(成宗) 때 목사 이약동 선생이 단소를 배설하였던 유서 깊은 자리다. 명산대천에 제(祭)를 지냄은 예로부터 국태민안을 비는 중요한 나라 일의 하나로 한라산신제는 백록담에서 봉행되었는데 그때마다 적설과 한풍으로 얼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새로 부임한 목사 이공은 인명의 희생까지 내면서 산 정상에서 지내던 산신제를 이곳에 제단을 마련하여 받들게 하고 비를 세웠다고 한다. 세월이 오래되매 신단과 비는 마멸되고 내력만이 구전으로 전해올 따름이다.

이에 신단을 복원하여 그 경위를 밝히는 한편. 목사 이공이 백성을 사랑하고 잘 다스린 자취와 내력을 기록하여 새기고자 한다. 이공의 본관은 벽진(碧珍)이고, 휘는 약동(約東), 자는 춘보(春甫), 호는 노촌(老村)이다.

1401년(태종 16) 남해현감(南海縣監) 덕손공(德孫公)의 아들로 태어나 1450년(문종원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제주목사로 부임하기는 1469년(성종 원년)이었다. 좌임(左任)하는 삼 년 동안 선정을 베풀어 도민의 복리증진에 크게 힘썼으니 이 산신단의 설립도 그 한 예로 꼽힌다.

관리로서의 청렴은 조선조를 통하여 공으로 표상되는 바니 제주를 떠날 때의 ‘문루에 채찍을 걸고 바다에 갑주를 던진(門樓掛鞭 海中投甲)’일화가 전해져 마침내 도민의 경앙(景仰)으로 생사당을 세워 기렸다고 한다.

더구나 대사간(大司諫)에 올라서도 제주를 사랑한 나머지 고마조달(故馬調達)의 적정과 수령의 민폐근절책(民弊根絶策)을 상주하여 백성의 괴로움을 덜어주었고 현명한 계책을 아뢰어 도민 교화에 이바지하였다.

공의 학문은 강호(江湖) 김숙자(金叔滋)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고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매계(梅溪) 조위(曹偉)와 더불어 도의(道義)의 사귐을 맺었으니 덕업은 포은(圃隱), 야은(冶隱)의 유맥(遺脈)를 잇고 행실과 문장은 유림의 영수로 나아가고 물러섬이 도리에 벗어남이 없었다. 나이 78세에 별세하자 임금은 예조의 관리를 보내 제사하고 평정(平靖)의 시호를 내렸으며 이름이 청백리에 올랐다.

해동추로(海東鄒魯)라 일컫는 공의 고향 금산(金山)에서는 그 학덕을 기려 청백서원(淸白書院)과 경렴서원(景濂書院)에 향사하였고 제주에서도 영혜사(永惠祠)에 배향되었다. 공이 간 지 496년이 지난 오늘 공의 남긴 덕을 길이 되새겨 삼가 이 비를 세운다.”

오른쪽에는 “단기 사삼이삼년 시월 일 제주대학교 총장 문학박사 연주 현평효 근찬 후학 안동 김응현 근서 한라산신제단복원 및 기적비건립추진위원회 근수(檀紀 四三二三年 十月 日 濟州大學校總長 文學博士 延州 玄平孝 謹撰 後學 安東 金膺顯 謹書 漢拏山神祭壇復元 및 紀蹟碑建立推進委員會謹竪)”라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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