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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왜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555
한자 乙卯倭變
영어음역 Eulmyo waebyeon
영어의미역 Wako Pirates Attack of 1555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동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왜변|왜란|일본의 침략사건
발생(시작)연도/일시 1555년 6월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555년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화북포
관련인물/단체 김수문|김성조|김직손|이희준|문시봉

[정의]

1555년(명종 10) 왜구가 제주도 화북포 일대에 침입한 사건.

[개설]

을묘왜변은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는데, 1555년(명종 10) 왜구 선박 70여 척이 1차로 전라도 영암·강진·진도 일대를, 2차로 제주도를 휩쓸며 약탈한 사건이다.

[역사적 배경]

이 사건은 조선과 일본 원활하지 못한 외교 관계와 일본 내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발생하였다. 즉, 1510년 삼포왜란(三浦倭亂)이 일어난 이래 조선 정부는 일본에 대한 세견선을 감축하여 교역량을 줄였다. 이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 쓰시마섬[對馬島] 등지의 왜인들이 1555년 5월 11일 배 70여 척을 타고 전라도 남부 지역을 1차 침입하였다.

[발단]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제주 방어가 마련되어가던 1555년(명종 10) 5월 1차 을묘왜변이 발생하였다. 왜구는 먼저 전라남도 달량진·장흥·강진 등을 침략하여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 그러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자 같은 해 6월에 제주를 침략했다.

[경과]

일본의 제주에 대한 약탈은 고려 시대 이후 계속되어왔으며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20여 차례나 있었다. 제1, 2차 을묘왜변의 왜구는 모두 동일한 무리들이었다. 그러나 제주 을묘왜변은 단순한 약탈의 성격을 떠나 제주도를 왜구의 본거지로 삼으려는 계획적인 침략이었다.

이 시기의 왜구는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전라도-제주도-북구주를 잇는 해상권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절해고도인 제주도에 근거지를 마련해야 했던 왜구는 1555년 6월 27일 1,000여 명이 선박 60여 척에 분승하여 화북포에 상륙하였다. 이후 3일간 제주성을 둘러싸고 제주민과 왜구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결과]

김수문 목사를 중심으로 민·관·군이 협력하여 왜구를 격퇴하였는데, 여기에는 김성조·김직손·이희준·문시봉 등의 이른바 치마돌격대(馳馬突擊隊)의 공이 컸다. 이에 명종김수문에게 일자(一資)를 올려주고, 비단옷 한 벌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김성조에게는 건공장군 벼슬이 제수되었다.

이리하여 제주도를 해상 근거지로 삼으려는 왜구의 꿈은 좌절되었으며, 1·2차에 걸친 을묘왜변으로 중앙 정부는 남해안 및 제주 지역의 방위 체제를 한층 강화하였다. 비변사의 권한을 확대하여 이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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