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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526
한자 儒敎
영어음역 Yugyo
영어의미역 Confucianism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성윤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대에 보급된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

[개설]

조선왕조 5백여 년 동안 유교는 지배 이데올로기이자 생활 윤리로 자리 잡았지만, 제주 지역에서는 무속 신앙 때문에 좀처럼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이형상(李衡祥)[1653~1733] 같은 적극적인 제주목사들의 활동에 힘입어 지방 유림들은 점차 자신들의 위상을 확보해 나가게 된다.

유배 왔던 중앙 관리들이 제주에 머물면서 제주도민들에게 경전을 가르친 것도 큰 몫을 했다. 토착 유학자들의 활동은 삼성사(三姓祠)의 유교식 제사 확립과 귤림서원(橘林書院)의 건설 등으로 나타났다.

유교가 제주 지역에 널리 퍼진 것은 19세기 이후이다. 특히 출륙금지령이 해제된 이후 제주도 유림 중에 호남 지역으로 건너가 유명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들어오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로써 조선 말기 제주 유생들의 학맥(學脈)이 형성되며, 일반인들도 조상의 제사를 유교식 예법에 맞게 지내는 것이 보편화되어 갔다.

[전래와 정착]

제주 지역에서 유교의 존재는 제주 삼성혈 유적의 성역화 사업으로 각인되었다. 이 사업은 1526년(중종 21)에 제주목사 이수동(李壽童)이 추진하였다. 이수동제주 삼성혈 주위에 돌 울타리를 쌓고 제주 삼성혈 북쪽에 홍문(紅門)과 혈비(穴碑)를 세워 삼성의 후예로 하여금 봄·가을에 유교식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그 뒤 1698년(숙종 24) 유한명(柳漢明) 목사가 동쪽에 삼을나묘(三乙那廟, 지금의 삼성전)를 세워 세 신인의 위패를 모시게 하였다. 삼성전은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령에 의해 사우(祠宇)가 헐렸다가, 1890년(고종 27)에 다시 세웠고, 1910년 중건하였다.

귤림서원은 1682년(숙종 8)에 세워졌는데, 김정·송인수·김상헌·정온의 사현을 봉향하다가 1695년(숙종 21) 송시열이 추향됨으로써 오현을 배향케 되었다. 이후 서원 철폐령에 따라 헐렸으나 1892년(고종 29) 귤림서원 자리에 조두비를 세우고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이곳이 오늘날의 오현단이다.

그리하여 19세기 이후부터는 일반인들도 조상의 제사를 유교식으로 지내는 등 유교는 점점 보편화되어 갔으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유교의 위상은 크게 추락한다.

조선총독부가 제주와 정의, 대정 세 향교를 모두 폐지하려 하자 유생들은 반대 운동을 일으켰다. 유생들이 모여 대정과 정의는 그만 두더라도 제주향교는 없앨 수 없다고 반발하자, 결국 두 곳은 폐쇄하면서 제주향교는 그대로 존속된다. 하지만 향교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

해방 이후 제주 유림들이 주로 모이고 활동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제주향교이다. 향교 내에는 명륜당, 대성전, 계성사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그 중 명륜당은 최근에 콘크리트로 다시 지은 것이다.

계성사는 1854년(철종 5)에 지어진 건물로서 오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성전에서는 공자를 위주로 공문십철·송조육현·조선십팔현을 모시고 있으며, 매년 춘추 2회에 걸쳐서 석전제를 봉행한다.

제주 유림들은 1948년 7월 17일 향교 재단을 설립하고,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제주초급중학교를 인수하여 제주명륜학원을 세웠다. 이어 1952년에는 제주상업고등학교를 설립, 운영하다가 1963년 모두 학교 법인에 넘겼다.

현재 제주향교는 성균관 산하로 되어 있으며, 각 향교별로 향교 임원과 신도 조직에 해당하는 유도회(儒道會)가 조직되어 있다. 지원 재단으로는 재단법인 제주도 향교재단이 있다.

1947년 제주 유림들은 제주도 유림대회를 개최하여 유도회 제주도 본부를 발족시켰다. 하지만 1960년 이후 유도회 총본부의 분규가 심해지면서 제주도 본부도 표류하다가 1961년 군사 정권에 의해 해체된다.

1970년에 들어서 유도회 제주도 본부 재건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분쟁이 발생하여 제대로 결성되지 못하다가 1973년 성균관 유도회 제주도 본부를 결성하였다.

[유도회 조직]

유도회는 제주지부와 정의지부, 대정지부로 조직되어 있는데, 제주지부에는 동부지회·서부지회·중부지회의 3개 지회가 구성되어 있다.

① 동부지회: 1953년 유도회 제주시 동부 분회로 창립했다. 영평동, 화북동, 아라동, 봉개동, 오라동, 오등동, 월평동, 용담동, 삼양동, 도련동, 회천동, 도남동,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 건입동을 관할 구역으로 한다.

1973년 분회를 지회(支會)로 바꾸면서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 용담동, 건입동은 중부지회로 분리되어 나갔다.

② 중부지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다수의 유림이 시내로 이주하여 새로 생긴 지회이다. 동부지회 소속이던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 건입동과 서부지회 소속이던 용담동을 합쳐서 1973년 유림 500여 명을 회원으로 창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③ 서부지회: 제주시 내 용담동, 연동, 이호동, 도두동, 해안동, 도평동, 내도동, 외도동을 합쳐서 관할 구역 내의 유림들이 모여서 1952년에 창립하였다. 이 가운데 용담동은 중부지회로 편입되었다.

[향교 재단]

2004년 3월 제주도 향교 재단은 1971년에 명륜아파트를 지어 임대 사업을 해오던 이도1동 삼성초등학교 동쪽의 부지에 유림 문화원을 준공하였다. 이곳에서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과 함께 ‘제주도 유학 지도자 과정’을 개설하여 유학사, 유학 사상, 경전 강독 등의 과정을 교육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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