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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할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376
한자 燃燈-
영어음역 Yeongdeung Halmang
영어의미역 Grandma Yeongdeung
이칭/별칭 영등신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인물/가공 인물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집필자 현용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인물|여신
관련작품 영등굿
성별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음력 2월 초하룻날 찾아와서 2월 15일경에 떠난다고 알려진 풍신(風神:바람신)이며 풍농신(豐農神).

[개설]

영등할망은 육지의 해안 지방에서는 풍신(바람신)으로서의 개념이 강하지만 제주 지역에서는 해산물이나 농작물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풍농신으로 더 알려진 신이다.

구전에 의하면,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룻날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복덕개'라는 포구로 들어온 다음 먼저 한라산에 올라가 오백장군에게 문안을 드리고, 어승생 단골머리부터 시작하여 제주 곳곳을 돌며 봉숭화꽃·동백꽃 구경을 한다.

그러고는 세경 너른 땅에는 열두 시만국 씨를 뿌려 주고, 갯가 연변에는 우뭇가사리·전각·편포·소라·전복·미역 등을 많이 자라게 씨를 뿌리고는, 2월 15일경 우도를 거쳐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내방신(來訪神)이다.

이 때문에 제주 지역에서는 2월을 ‘영등달’이라고 부르며 영등굿을 벌여 영등할망을 대접하는데, 초하룻날은 영등할망을 맞는 영등 환영제를 하며 12일에서 15일 사이에는 영등할망을 보내는 영등 송별제를 연다. 굿은 주로 마을 단위로 행해지며, 어업이나 농업에서의 풍요를 기원한다.

[활동사항]

영등할망은 제주 앞바다의 어디쯤에 있는 외눈박이 섬에서 찾아온다는 사람도 있고, 강남천자국에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거처가 불분명한 신이다. 다만 음력으로 2월 초하룻날 제주도에 와서 바닷가를 돌면서 보말(고동의 일종)을 까먹으며 다녀서, 2월에 보말 속이 비어 있으면 영등할망이 찾아온 증거라고 한다.

제주 지역 심방들은 영등할망이 외눈박이 섬에서 온다고 믿고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에 한경면 판포리 사람이 우연히 외눈박이 섬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수원리 사람들이 표류해서 들어오자, 외눈박이들이 판포리 사람한테 수원리 사람들을 찬거리로 삼아야 하니 잘 감시하라고 일렀다.

이에 판포리 사람은 수원리 사람을 몰래 도망가게 해주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개남보살〔觀音菩薩〕, 개남보살.” 하고 외라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멀리 고향 마을이 보이자 수원리 사람들은 마음이 놓여 개남보살 외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 순간 다시 거대한 바람이 불더니 수원리 사람들을 외눈백이 섬으로 돌려보냈다. 판포리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더니, 이번에는 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개남보살을 외면서 가라고 구제하여 주었다.

수원리 사람들이 그 은혜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이 공을 어떻게 갚느냐?”고 하였다. 그러자 판포리 사람이, “나는 2월 초하루에 제주에 들어가 보말을 까먹으며 바닷가를 도니, 그리 알고 나를 위하라.” 하고 말했다.

그 후로 수원리 사람들은 영등당을 짓고 영등 환영제와 영등 송별제를 지낸다고 한다.

[캐릭터 분석]

외눈박이 섬에서 살든 강남천자국에서 살든,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룻날 제주로 들어와서 그 달 15일경 제주를 떠난다. 이 기간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변덕스러운 날씨와 혹한이 계속된다.

제주 지역 속담에 “영등할망 청치메 입엉 들어오민 날 좋곡, 우장 썽 오민 날 우치곡, 무지게 입엉 오민 춥곡, 몹쓸 민 름 분다”는 말이 있다. 영등할망이 청치마를 입고 오면 날이 좋고, 우장을 쓰고 오면 비가 내리고, 누비옷을 입고 오면 춥고, 사나우면 바람이 분다는 뜻으로, 영등할망이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영등할망이 노한다고 배를 타지 못하게 하는데, 이것 역시 사나운 날씨와 관련 있는 속신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곧 영등할망은 제주 지역의 2월 날씨와 다름이 없는 존재로, 자연 현상이 신격으로 좌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을 단위로 영등굿을 하며 영등할망을 위했던 것은, 날씨가 일 년 내내 농사와 어업 활동에 지장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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