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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225
한자 申景濬
영어음역 Sin Gyeongjun
이칭/별칭 순민(舜民),여암(旅菴)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찬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제주목사
출신지 전라북도 순창군
성별
생년 1712년(숙종 38)연표보기
몰년 1781년(정조 5)연표보기
본관 고령(高靈)
대표관직 사간원정언|사헌부장령|제주목사|승정원좌승지|북청부사|순천부사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순민(舜民), 호는 여암(旅菴). 아버지는 신숙주(申叔舟)[1417~1475]의 아우 신말주(申末舟)[1429~1503]의 10대손인 신내(申淶)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 이의홍(李儀鴻)의 딸이다.

[활동사항]

1754년(영조 30)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한양에서 생활하는 동안 홍양호(洪良浩)[1724~1802]와 교분이 두터웠다. 사간원정언,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다음 1769년(영조 45) 종부시정이 되어 강화의 선원각(璿源閣)을 중수하고 귀향하였다. 이후 영조의 명으로『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감수하였고, 1770년(영조 46)『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를 편찬할 때『여지고(輿地考)』를 맡았으며,『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를 감수하였다. 1771년(영조 47) 승정원좌승지에 임명되었으며, 북청부사를 거쳐 1774년(영조 50) 전라북도 순천부사에서 7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1775년(영조 51) 2월까지 재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제주순무어사 홍상성(洪相聖)[1734~?]과 뜻이 맞지 않아 파직되어 한양으로 소환되었으며 홍상성은 전라남도 해남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홍상성이 부임할 때 창기(娼妓)를 데려왔다고 신경준이 문제를 삼은 것이 원인이 되었다. 1779년(정조 3) 낙향하여 여생을 마쳤다.

[학문과 사상]

학문이 뛰어나고 지식이 해박하여 관직·성률·의복·법률·기서에 통달하였고,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한 고증학적 방법으로 지리학을 개척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술에 『운해훈민정음(韻解訓民正音)』, 『일본증운(日本證韻)』, 『언서음해(諺書音解)』, 『평측운호거(平仄韻互擧)』, 『거제책(車制策)』, 『병선책(兵船策)』, 『수차(水車)』, 『직서(稷書)』, 『장자변해(莊子辨解)』, 『강계지(疆界志)』, 『산수경(山水經)』, 『도로고(道路考)』, 『산수위(山水緯)』, 『사연고(四沿考)』, 『가람고(伽藍考)』, 『군현지제 (郡縣之制)』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운해훈민정음』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문자론(文字論)을 가장 깊이 천착한 학술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신경준이 작성한 고지도가 「신경준의 고지도」라는 이름으로 1979년 12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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