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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224
한자 食生活
영어음역 Siksaenghwal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집필자 오영주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왔던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개설]

넓은 의미의 식생활은 식품의 산출, 식품의 조리, 가공 및 유통, 상차림의 규범, 의례와 음식의 관행, 용구와 식기, 식품의 금기 및 풍습, 기호 등 음식물 섭취 행위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제주인의 식생활은 자연 재해와 척박한 자연 환경을 극복하면서 이루어낸 섬 문화의 결정체이다.

[자연 환경]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인 까닭에, 한라산 봉오리에서 아래쪽 사방으로 펼쳐진 하천은 평상시에 마른 상태로 있다가 비만 오면 지하로 흘러든다. 흘러든 지하수는 해안에서 해수에 밀려 땅위로 솟아나거나 바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용출되어 샘을 이룬다. 그래서 제주인들은 이 용천수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살아왔다. 해안 지대를 ‘알드르’라하고 밭농사와 어업으로 살았으며, 해안에서 떨어진 마을을 ‘웃드르’라고 하며 밭농사와 목축업으로 생활하였다.

제주도는 돌이 많고 토질이 부박하여 단지 섬 전체의 27%만이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다. 게다가 토양은 화산회토여서 침수성(浸水性)이 강해 비가 와도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고 만다. 논농사 짓기에 아주 부적합하기 때문에 밭작물을 주로 경작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밭에는 자갈이 많아 토심이 얕고 토양 입자도 가볍다. 씨앗을 뿌리면 쉽게 발아 하나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해 가뭄에는 농작물이 쉽게 말라 죽어 한재가 심했다.

또한 비가 많이 와서 수재가 많고 태풍의 길목이라 풍재가 흔했다.

자연 재해가 거듭되는 날이면 흉년이 될 수밖에 없었고 도민들의 생활을 곤경에 처하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혹독한 자연환경은 농작물의 재배 방법과 작목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고 이로 말미암아 식생활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해안가에 조간대가 발달하고 해안선이 길기 때문에 또 하나의 밭이 형성된다. 여기에 동해와 서해에서 유입되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된다.

그래서 널리 깔린 암초에 해조류가 부착하여 잘 자라게 해주고 더불어 생선어패류도 서식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해준다. 아울러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한류성 어종과 난류성 어종도 함께 모여들어 풍성한 어장을 형성하게 된다.

이래서 제주인은 땅만이 밭이 아니라 해안가에 펼쳐진 바다도 밭(‘바당밭’)이라고 말한다. ‘바당밭’이 있었기에 해녀가 생겼고 해녀들이 채취한 생선어패류가 있었기에 단백질의 결핍에서 오는 영양 실조(마라스무스, 쿼시아코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국 제주 바다는 해녀들의 생업을 위한 삶의 터전인 동시에 생명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단백질을 공급해주면서 제주민의 생명을 지켜온 은혜의 밭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에는 섬 가운데 한라산이 솟아있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난대에서 온대 식물, 그리고 고산 지대의 한대 식물이 고루 분포되어 있어 338종의 약용 및 식용 식물을 포함해서 2,000여종의 식물들이 서식한다.

제주인들은 자연 재해에 맞서 이들을 구황 음식으로 그리고 약용으로 적극 사용하는 지혜도 터득하였다.

한편, 제주도는 온통 돌로 덮여있어 석다(石多)의 섬이라고 한다. 검고 구멍이 많은 현무암 돌도 식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선사시대부터 제주인들은 돌을 식생활 용기로 활용하면서 식문화를 창조하여왔다. 칼도 돌이고 부엌의 솥덕도 돌이요 곡물을 탈곡하는 연자방아도 돌이요 곡물을 제분하는 맷돌도 돌이고 양념을 빻는 확도, 기름을 짜는 ‘지름틀’도 모두 돌로 만들었다.

결국 이러한 화산섬의 자연 환경이 독특한 제주 식문화의 창출에 직간접적으로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제주인은 척박한 환경에 도전하고 응전하면서 그리고 자연이 주는 산물의 혜택을 식생활 자원으로 십분 활용하면서 생존을 위한 방편으로 삼았던 것이다.

[제주 음식의 역사]

제주의 시대적 식생활의 변천 과정은 문헌의 제약으로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고대 탐라국 시대의 식생활은 단지 중국의 『후한서(後漢書)』와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誌)에 오곡을 심고, 소와 말, 돼지를 길렀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탐라국 초기 시대에 이르러 토양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유수천 중심의 산도(稻) 벼·보리·조·콩·팥·녹두·메밀 등 곡류 농업과 집짐승 기르기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농사의 보급은 떠돌아다니는 생활에서 일정한 지역에 마을 단위로 터전을 삼아 정착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게 되었다.

또한 삼한 지방을 왕래를 하면서 상업을 한 것으로 보아 고대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중국과 일본을 거치는 중간 무역 지대를 구축할 정도로 해상 활동이 성행한 것으로 미루어 선박 제조 기술과 어로 활동도 발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반도 세력의 변화에 따라 5세기에 백제에 복속되고 이어서 신라에 조공을 바치는 관계를 유지하다가 고려시대 11세기에 이르러 탐라국은 독립 국가로서의 독립성을 상실하게 된다.

탐라가 중앙 정부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군수품인 말을 관리하고 토산물(귤, 해산물)과 식량(보리)의 착취 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고려 말에 이르러 고려의 수도인 송도와 강화도에서 많은 사녀들이 들어오고, 삼별초 군대가 제주 고성리항파두리성을 구축한 후에는 1270년(원종 11) 벼농사와 양잠 등의 기술도 함께 도입되어 식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그 후 고려가 원에 지배당하자 1273년(원종 14) 6월에 원은 몽골병 500명을 제주도에 주둔시키는가 하면, 1275년(충렬왕 원년)에 원은 국립 목마장을 제주 성산 수산평에 설치하고 이를 관리 감독하기 위하여 죄수 140여 명과 왕후 왕족들이 몽골에서 제주로 들어 왔다.

또한 1282년(충렬왕 8) 일본 정벌에 대패한 원은 제주에 몽고군 1,400여 명을 주둔시키고 일본 정벌의 병참 기지화 하였다.

목마장의 건설로 제주민의 농경지가 말에 의해 황폐화되기 시작하였고 외부인들의 지나친 유입으로 말미암아 제주민의 식량 자급 사정은 더욱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공민왕 23년(1374)에 몽골의 압제에서 벗어났고 이 때 항복한 몽고인들은 그대로 탐라에 살아서 귀화인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몽골의 육식 문화가 제주에 뿌리를 내렸고 목축과 식품 가공 기술이 제주에 전래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조정의 마정(馬政)과 진상은 더욱 강화되어 농경지가 목장으로 소용되는가 하면 제주의 각종 명산물(감귤, 전복, 생선, 미역, 버섯, 약재)의 진상과 탐관오리의 수탈에 시달려야했다.

이러한 와중에 더 나은 삶을 찾아 육지로 나가는 제주민이 증가하자 1629년(인조 7)부터 약 200년간 국법으로 출륙을 금지시켰다. 이로 인해 어업 활동이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어획에서 얻는 식량 수급도 부족하게 되었고 제주의 식문화가 육지화 되는 과정도 매우 더디게 일어났다.

한편, 조선 사회의 통치 이념인 유교가 전해지면서 제주 사회도 중앙에서 교시하는 유교식 예법에 따라 음식을 준비함으로써 육지의 음식과 조리법이 제주의 의례에 도입되었다.

이렇듯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천 년 동안 제주민은 외부인의 침략과 지배자들에 의해 곡물, 해산물, 과일, 고기 등의 고급 먹거리는 공출, 진상 등의 명목으로 착취당했다.

이러한 착취 사회에서 제주 토착민들은 이들이 생산한 먹거리들이 지배자들의 것으로 전락되고 식량 사정은 더욱 궁핍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제주 음식에 생존을 위한 구황 음식이 많은 것은 이러한 요인도 가세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도 힘든 노역과 공출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군수품으로 쓸 고구마 주정을 생산하기 위하여 일인 관리들은 제주도에 고구마 재배를 활성화 시켰고,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표고를 재배하기 위하여 한라산에 대단위 표고밭을 조성하여 그들의 식량으로 가져갔다.

1928년 제주도와 오사카 사이에 뱃길이 트여 수많은 제주민과 일본인이 일본을 오고갔으며, 1940년 대 초에 제주도에 살던 일본인은 만 명이 넘었고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는 관동군 10만 명이 제주도에 주둔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일본의 식문화가 제주에 전파되고 일본 오사카를 중심으로 제주촌이 형성되어 제주의 식문화가 일본에 정착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광복 후 1950년 6·25동란에는 피난민이 제주 항구(제주항, 한림항, 화순항, 성산포항)로 대거 유입되어 당시 제주 인구의 50%를 넘을 정도였다.

전후에 귀향하지 않고 제주에 잔류한 이북 5도민은 당시 약 9,000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이러한 안구 유입은 육지 음식이 제주에 혼재하거나 융합되는 현상으로 나타나 제주 음식의 육지화에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이들 중에는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제주시 동문시장을 중심으로 외식업에 종사하는 자가 많았고 이를 통해 제주인은 육지 음식을 접하게 되었다. 게다가 미군정이 모슬포 공군부대에 주둔하면서 제주도민들과 자연적인 접촉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양식(구운빵, 커틀릿)의 문화가 제주에 도입되기도 하였다.

제주 음식은 풍토와 역사적 배경이 달라 본래 육지와 다른 구조와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제주의 식문화는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육지화의 과정에 놓이게 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제주 음식은 제주 음식 전문 식당에서나 맛볼 수 있는 별미 음식으로 전락하고 있다.

제주도민이 제주 음식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하지 않고 동시에 제주 음식의 소비가 이루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제주 음식은 독립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육지의 생활 문화와 생활 환경’의 한 범주에 속하는 음식으로 남게 될 것이다.

[건강 식생활]

(1) 조리 방법에서 본 영양적 우수성

첫째, 재료의 참맛이 살아 있으면서 저지방식을 유지할 수 있다.

신선한 재료에 양념이나 기름을 사용하지 않아 식품 자체의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육류 요리는 삶거나 끓이는 습열 조리법을 사용하고, 생선도 국, 조림, 구이, 물회 등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조리한다.

채소나 해조류를 무칠 때도 참기름이나 나물기름을 조금 칠 정도이다. 또한 된장으로 대부분 무치기 때문에 열량이 추가되는 양이 매우 적다. 따라서 저지방 저열량식으로 체중 조절에 효과적이다.

둘째, 저염식이다.

제주의 국이나 무침은 대부분 된장으로 양념을 한다. 소금이나 진한 간장은 나트륨 함량이 높아 신장에 스트레스를 주고 고혈압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된장은 이에 비해 염분 함량이 훨씬 적고 구수한 맛이 있어 짜지 않게 조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셋째, 수용성 필수 영양소의 손실을 최소화 하는 요리이다.

나물을 조리할 때 푹 삶지 않고 살짝 데치므로 열에 약한 비타민 C의 손실을 줄인다. 또한 물에서 조리 시간이 짧기 때문에 수용성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용출되어 손실되는 양이 매우 적다.

무침을 할 때는 참기름이나 나물기름을 살짝 첨가해서 무쳐낸다. 나물에 들어 있는 지용성 비타민인 베타카로틴, 비타민 K, 토코페롤 등의 체내 흡수를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소량의 식초를 첨가함으로써 비타민 C가 공기 중에 산화되는 것을 막아 주고 소화관에서 무기질이 잘 빠져 나오도록 도와준다.

넷째, 생식을 많이 한다.

제주인들은 생식을 즐겨 자리도 물회로 만들어 먹고 국도 냉국을 많이 먹는다. 또한 콩잎쌈, 부르쌈(상추), 호박잎쌈, 미역쌈 등등 쌈을 싸서 먹기를 즐겨한다.

(2) 식재료의 혼합 측면에서 본 영양적 우수성

첫째, 제주 음식의 영양적 지혜는 재료의 상호 보완에 있다.

우선 주식은 잡곡의 혼합물이다. 보리+조, 보리+팥+조, 조+고구마, 보리+채소(무, 쑥 등), 보리+해조류(톳, 감태, 너패) 등 잡곡 끼리의 혼합, 잡곡과 채소의 섞음, 잡곡과 해조류의 섞음을 통해 밥을 지었다.

죽은 곡물과 생선 어패류를 혼합한다. 전복죽, 옥돔죽, 깅이죽, 오분자기죽이 그것이다. 또한 육류도 섞어 닭죽, 말고기죽, 꿩고기죽 등을 만든다.

범벅은 메밀가루에 고구마나 해조를 넣는다.

국도 역시 옥돔무국, 호박갈치국, 성게미역국, 몸국, 고사리육개장, 말고기무국 등 혼합된 재료를 사용한다.

이렇듯, 제주 음식에는 한 가지 재료로만 이루어진 음식이 드물고 여러 가지 식재료가 섞여 있어서 영양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3) 상차림에서 본 영양적 우수성

제주의 밥상은 단순하나 영양적으로 손색이 없다. 한 가지 중심 음식에 이미 여러 가지 재료가 섞여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다. 밥을 큰 그릇에 퍼서 가운데 두고 반찬과 나물들은 손을 내밀어 잡을 수 있는 식사 작업 범위에 놓으며 국은 개인별로 한 사발씩이다. 밥은 열량 섭취를 위한 것이므로 함께 섭취하고 국은 자기 분량대로 섭취한다.

국은 단백질 급원뿐만 아니라 비타민과 무기질 등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영양소 급원으로 역할한다. 또한 여름철에는 냉국을 여러 그릇 먹음으로써 땀으로 손실된 염분과 수분 섭취에 적격이다. 일종의 스포츠 드링크인 셈이다.

함께 먹는 제철 쌈은 생리 활성 물질의 보고이다. 콩잎을 예로 들면, 제니스테인이라는 여성 호르몬 유사 물질이 들어있어 칼슘의 흡수를 도와주고 부족한 여성 호르몬을 보충하는 효과가 있다. 결과적으로 갱년기 여성들에게 흔한 골다공증과 유방암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다.

제주 상차림은 생선이 많다. 생선어패류에는 DHA나 EPA와 같은 오메가 3 지방산이 많다. 오메가 3 지방산은 혈액을 맑게 하고 혈관을 청소하는 효과가 있어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결국 제주 밥상은 현대인에게 문제가 되는 3고(고열량, 고지방, 고식염)와 3저(저섬유질, 저필수미량영양소, 저생리활성물질)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웰빙 식단이다.

[제주 음식의 특징]

제주 식문화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조리법이 단순하고 식품에 가능한 한 인간의 손질을 최소화한다는 점이다. 이는 조리 담당자인 제주 여성이 생업과 가사 노동을 동시에 수행해야만 했으므로 식사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끓이는 맑은 국, 냉국이나 물회 또는 쌈 등의 생식이 많은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이는 조리 시에 인간의 손질을 최소화함으로써 식품 고유의 맛과 영양 성분의 손실을 줄이고 체내 이용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육지부의 국류는 대부분 진한 탕류이나 제주의 것은 맑은 국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한식의 맛을 진한 양념 맛이라고 한다면, 제주의 맛은 재료의 싱싱한 자연의 맛이라 하겠다.

둘째, 분식(가루음식)과 입식(잡곡밥)이 혼재된 통합 식문화권이다. 미식 문화권인 본토는 입식의 쌀밥 문화가 주를 이루나, 제주는 조, 메밀, 콩 등의 잡곡 가루를 이용한 분식 문화권의 성격이 강하다. 범벅, 수제비, 개역, 칼국수, 발효찐빵(상애떡), 잡곡떡, 고구마떡, 메밀가루 국 등은 분식 문화가 발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음식들이다.

셋째, 식재료의 다양성 및 제철 식재료의 적극적 이용이다. 제주인들은 만들 요리를 생각해서 식재료를 미리 구입하거나 계획을 세워서 조리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그때그때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상황에 맞게 조리해서 먹는다.

이는 제주 지역이 타지역에 비해 연중 따뜻하여 산과 들, 해변과 바다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식재료의 다양성은 제주의 음식을 무려 470여 품수를 헤아리게 하였으며, 전주 지방 280품, 오끼나와 150품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이다.

넷째, 모두가 다 함께 만들어 나누어 먹는 나눔의 식문화이다. 밥과 국의 상차림은 한식과 정반대이다. 밥은 큰 그릇(낭푼)을 상 가운데 두고 국그릇은 제 각각 따로 먹었다. 언제 누가 식사에 와도 국 한 그릇만 준비하면 함께 바로 먹을 수 있는 공동식(共同食)의 문화가 저변에 깔려있다.

특히 일상식이 아닌 의례식은 반드시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일상식은 탄수화물 위주의 열량 섭취를 위한 음식이었지만, 의례식은 고기나 생선, 두부 등과 같이 특별한 음식으로 추렴이나 나눔을 통해 단백질 섭취의 공동 기회를 마련하였다.

다섯째, 구황 음식과 민간요법용 음식이 발달하였다. 제주인의 문화는 노동 문화이며 식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거친 환경(태풍, 가뭄, 홍수, 거친 토양)과의 ‘투쟁 문화’였다.

쌀밥과 고기는 주로 큰일이 있을 때나 먹을 수 있었고, 일상식의 주식은 거친 잡곡밥과 범벅 그리고 죽과 고구마였다. 범벅류와 죽류 그리고 국류가 발달한 것은 바로 이 기근을 이기기 위한 방편이었다.

또한 제주에 각종 약술과 약재를 첨가한 엿류를 비롯한 각종 음식이 다양한 것은 제주에 아열대성 약용 식물이 풍부하고, 힘든 노동으로 쇠약해진 신체를 보할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버리는 것 없이 다 먹는 ‘일물전체식(一物全體食)’을 한다(조냥정신). 재료를 손질할 때도 칼보다는 손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가능한 한 폐기율을 줄인다.

[제주 음식의 종류]

제주 음식은 아열대성 기후 풍토에 맞게 소박하지만 단순 호쾌(simple-heartful)하다. 제주 음식 총 470품목에 대하여 식품군별로 분류하면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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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주음식의 종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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