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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천 전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169
한자 松淡川戰鬪
영어음역 Songdamcheon Jeontu
영어의미역 Songdamcheon Battl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일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투
발생(시작)연도/일시 1270년 11월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270년 11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송담천
관련인물/단체 이문경|김수|고여림

[정의]

1270년(원종11) 11월 삼별초의 이문경 부대와 고려 관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역사적 배경]

무신 정권 몰락 후 고려는 왕정복고를 이루면서 개경 환도를 단행했던 한편, 삼별초는 계속적인 대몽 항쟁을 내세워 새로운 정부를 건립하였으며 진도로 내려가 용장산성을 구축하고 통치 기반을 다져 나갔다.

삼별초가 진도에 거점을 잡자 고려 정부는 이러한 삼별초의 행동에 상당히 긴장하였으며, 제주마저 삼별초의 손에 넘어갈 경우 삼별초의 저항 기반은 더욱 탄탄해질 것이므로 고려 정부도 제주도의 지정학적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목적]

고려 정부는 삼별초로부터 제주를 방어하고자 하였으며, 삼별초는 제주를 마지막 대몽 항쟁의 근거지로 삼기 위해 제주 지역에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발단]

1270년 9월 고려 정부는 김수(金須)고여림(高汝霖) 장군이 거느린 군대를 제주에 보내 방비케 하였다. 관군은 항파두리성 남쪽 약 4㎞ 지점 해발 650m 오름, 즉 기생 화산인 삼심봉에 진지를 구축하는 한편 제주시 화북동 일대 해안 지역을 방비하는 시설도 설치하였다.

[경과]

1270년 11월 이문경 부대의 삼별초군은 제주의 서쪽 명월포(明月浦)를 통해 상륙하여, 관군을 공격 목표로 삼아 동쪽으로 나아가 현재의 화북동 오현고등학교 앞거리 동제원(東濟院)에 진을 쳤다.

삼별초군은 곧바로 공격을 개시하였는데 격전지는 동제원 서쪽 바로 옆에 있던 송담천으로, 이 송담천을 경계로 관군과 삼별초군 간에 일진일퇴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관군은 대략 1,000여 명 정도로 추정되지만 삼별초 이문경 부대의 수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결과]

송담천 전투 결과 김수고여림 장군을 비롯해 제주 방어에 나섰던 관군은 모두 전사하였다. 삼별초군의 희생도 많았는데 피가 강물처럼 흘러 송담천의 바위는 피에 젖어 지금도 붉다는 설이 전해질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다. 사태 수습을 마친 이문경 부대는 더 동쪽에 있는 조천포로 나가 그 곳에 진을 쳤다.

삼별초군이 송담천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제주 지역을 장악하였으며, 진도 함락 이후에는 제주를 마지막 대몽 항쟁의 근거지로 삼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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