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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805
한자 朴圭壎
영어음역 Park Gyuhu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 1405
시대 근대/근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학생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 1405
성별
생년 1900년(고종 37)연표보기
몰년 1975년연표보기
본관 순창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순창. 아버지는 박이민(朴离旼)이며 형은 항일운동가 박교훈(朴喬壎)이다.

[활동사항]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일 때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앞에서 전단 60여 매를 살포하고 만세 시위를 벌여 3월 8일 하숙집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경성고등보통학교 동창생이자 제주 출신 홍형표(洪亨杓)에게 “2천만의 대표자가 되어 대항하기 위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등등 이 글을 보거든 찢어버려라”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이 들통 났다.

또한 종형에게 보내려 3월 7일 밤에 쓴 “나는 조선의 자유를 얻기 위해 연일 시위 운동을 하고 학교는 동맹 휴교에 들어갔다”는 편지도 증거로 압수당하였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미결 기간 동안 복역하였다.

1921년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한상호(韓相鎬)·송택훈(宋澤薰)·황청하(黃淸河) 등과 함께 귀향하여 강연회 개최 등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고베에 있는 염료회사(染料會社)에서 여러 해 근무하다가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경기도에 있는 송고주식회사에서 근무하였고, 1946년 조선대화방직주식회사에서 근무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광복절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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