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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739
한자 無水酒精濟州工場
영어음역 Musu Jujeong Jeju Gongjang
영어의미역 Jeju Plant of Absolute Alcohol
이칭/별칭 제주 주정 공장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은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설|수용소
면적 약 4만 3685㎡

[정의]

일제 강점기 동양 척식 주식회사 제주 지사에서 제주항 근처에 건립하여 운영하였던 주정(酒精) 공장.

[건립경위]

무수 주정 제주 공장은 1940년 동양 척식 주식회사 제주 지사가 제주항 근처의 부지 약 4만 3685㎡에 약 7,580㎡ 규모로 착공하여 1943년 완공한 주정 제조 공장인데, 동양 척식 주식회사 제주 지사에서는 일본 전역에 주정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동양 제일의 시설 규모라고 자랑하였다.

제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구마·설탕·강냉이 등을 가지고 주정, 즉 알코올을 제조하여 이를 군사용 비행기의 연료로 보급하기 위해 건립되었던 것인데, 이때부터 제주 지역 농가에서는 얇게 썰어 볕에 말린 절간(切干) 고구마 생산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변천]

해방 후 무수 주정 제주 공장은 미군정에서 신한 공사(新韓公社)를 통해 접수하여 계속 관리하다가 1946년 3월 신한 공사가 해체된 이후 미군정청 상공부로 이관되었다. 당시 무수 주정 제주 공장에 보관된 절간 고구마를 배급하여 도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장에 있던 발전기를 이용하여 전력도 보급하였다.

1948년 제주 4·3 사건이 발발하자 군부대는 주정 공장을 접수하여 처음에는 무기를 제조하는 조병창(造兵敞) 시설로 이용하였다. 제주 4·3 사건 발발 이후 수용소로는 농업 학교 천막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1948년 가을 초토화 작전이 전개된 이후에는 농업 학교 천막만으로는 수용소 시설이 부족하였다.

이에 따라 1948년 겨울부터 고구마를 저장하던 무수 주정 제주 공장 언덕 위의 10여 개 창고를 수용소로 쓰기 시작하였다. 시설이 대규모이다보니 나중에는 제주 지역 내 최대의 수용소가 되었으며, 특히 1949년 봄부터는 수용소하면 무수 주정 제주 공장을 가리킬 정도였다고 한다.

1949년 3월 제주 4·3 사건의 마무리 작전으로 토벌과 함께 선무 공작을 전개하여 비행기가 섬 전체를 돌며 귀순 권고 삐라를 뿌렸는데, 죄가 없어도 걸리면 무조건 죽던 시절과는 달리 산에서 내려가도 죽지 않는다는 말이 돌았다.

이때부터 하산자가 급격히 늘어나 한 달 만에 수감자는 1,500여 명으로 늘어났으며 1949년 4월 12일 상황 보고에는 포로가 3,600여 명으로 조사되었다. 포로들 중 대다수는 중산간 마을의 비무장 주민들로 무차별 학살이 무서워 산으로 도망갔던 죄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무수 주정 제주 공장의 고구마 창고가 필요했던 건 이 때문이었다.

1951년 1월 무수 주정 제주 공장은 이종열에게 불하된 이후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다가 1973년 1월 천마 물산이 인수하여 진로 주조에 임대하였지만 오폐수 처리에 따른 과다한 비용 및 원료 구입 문제 때문에 조업이 자주 중단되었다.

결국 1983년 조업이 완전히 중단됨에 따라 1989년 5월 12일 공장의 상징인 굴뚝이 해체되었다. 천마물산은 1993년 공장 대지에 3,293㎡ 규모의 창고를 건립하였으며 고구마 저장 창고가 있던 부지에는 아파트 8동을 건립하였다.

[구성]

현재 제주항 여객선 터미널 맞은편 동쪽 언덕 위 아래가 옛 주정 공장이 있던 자리인데, 공장 부지 중 언덕 아래는 무수 주정 제주 공장이 있던 자리이며 언덕 위에는 고구마 창고 10여 개가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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