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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671
한자 馬場稅
영어음역 majangse
영어의미역 horse pasturage tax
이칭/별칭 목장세(牧場稅),장세(場稅),장전세(場田稅)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만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799년연표보기

[정의]

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시행된 목장내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

[개설]

마장세는 1799년(정조 23) 제주목사 조명즙(曺命楫)이 신설한 수취 제도이다. 마감, 목자, 장교, 그리고 군인 등의 녹료(祿料)를 지급하기 위해 목마장 안의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양곡에 대해 세금으로 쌀을 걷었다. 목장세(牧場稅), 장세(場稅) 또는 장전세(場田稅)라고도 한다.

[제정배경 및 목적]

조선 후기 영조·정조대에 들어와 제주 지역에는 가뭄과 흉년이 빈발하면서 목마장이 폐장되는 사례가 나타났다. 이에 제주도민들은 1770년(영조 46)부터 일부 폐장된 목마장의 개간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제주목 관아 입장에서도 개간을 허락하고 세금을 걷으면 지방 관아의 수입이 늘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이에 따라 개간이 허락되고 목마장내 경작지 농사에 대해 마장세가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1799년 이전에도 마장세의 형태는 이미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1784년(정조 18) 어사 심낙수(沈樂洙)의 건의로 제정된 「목장신정절목(牧場新定節目)」에 따라 목장내 경작 허용 구역인 허경구(許耕區)에서 경작한 농민들로부터 받은 세금을 장세고(場稅庫)에 보관하여 공용했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내용]

마장세는 조선 후기 제주관아의 주요 세원이었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 장세고(場稅庫)가 설치되었다. 장세고는 제주도 중산간 지대의 목마장인 10소장과 산장 3장(침장, 상장, 녹산장) 등 모두 13장을 관할하며, 그 안의 목장전, 가경전(加耕田), 화전으로부터 세금을 걷고 있었다. 매년 진휼고에서 감관(監官), 색리(色吏)가 파견 나와 걷었다.

마장세는 정기적으로는 집사, 군관의 급료, 일곽대(日藿代), 제향미(祭享米), 사창 예하미, 향교·서원 예하미, 호고(戶庫) 원전세(元田稅) 혁파대 등으로 쓰였으며, 비정기적으로는 영문(營門), 본관(本官) 등에 대해 기별채(奇別債), 도배지가(塗裵紙價), 후풍량료하(候風糧料下), 영호송선십인가(迎護送船什人價) 등의 이름을 지출되었다.

[변천]

목마장 안에서 곡식이 자랄 만한 땅을 골라 밭을 일구면 마장세란 이름으로 곡물을 내야 했다. 마장세는 본래 기준 수확량에 따른 세율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마장세가 해마다 증가하여 수천 석이 부과되면서 목마장내 경작 농가들의 불만이 팽배해졌다. 이에 따라 1860년(철종 11)에 비변사에서는 임금께 아뢰어 마장세를 880석으로, 후에 다시 505석으로 감해주기도 했다.

[의의와 평가]

마장세의 경감 조치에도 불구하고 부담은 여전히 컸고 불만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불만은 결국 피지배 계층인 농민의 권익 신장 운동인 1862년(철종 13)의 강제검(姜悌儉) 난과 1898년의 방성칠(房星七)의 난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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