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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469
한자 南門-
영어음역 Nammun Roteori
영어의미역 Nammun Rotary
이칭/별칭 남문 사거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도로와 교량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 2동|삼도 2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도로
구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 2동삼도 2동 남문로중앙로가 만나는 지점지도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 2동삼도 2동 남문로중앙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도로.

[명칭유래]

남문로가 조선시대 제주읍성의 남문이 있었던 곳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므로, 남문로타리도 그 유래를 같이한다. 남문 로터리의 이름인 남문지(南門址)는 제주시 이도 2동, 속칭 남문통에 있었던 남문터로, 여기에는 남문의 초루가 있었다.

이른바 고루라는 것인데, 문 위에 높은 다락을 지어서 먼 곳을 바라보는 곳이다. 1512년(중종 7) 목사 김석철(金錫哲)이 옛 문루를 고쳐 세우고 정원루(定遠樓)라 명명하였는데, 1705년(숙종 31)에 목사 송정규(宋廷奎)가 증수하였고, 1780년(정조 4)에는 목사 김영수(金永綬)가 또 증수하였다고 한다.

[변천]

남문 로터리가 지금처럼 둥글게 만들어진 때는 중앙로의 새로운 구간[현재의 중앙로터리-남문 로터리, 시민들이 통칭 중앙로라 부르는 길]이 뚫린 1969년 이후이다. 그 이전까지 이 로터리 지역은 대부분 주택가였다. 따라서 로터리가 생겨나면서 없어진 옛집들이 많았다.

당시 주택의 위치가 도로보다도 낮은 곳에 있어서 로터리를 만들 때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길을 찾아내야만 했다. 이 때문에 남문 로터리에서 남쪽으로 제주 시민 회관 입구 쪽까지의 중앙로 구간은 경사가 꽤 심한 편이 되었다고 한다.

남문 로터리가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64년에 제주 시민 회관이 옛 오일장터에 세워지고 1969년 중앙로의 새로운 구간[남문 로터리~중앙로터리]에 길이 뚫린 뒤인 1970년대부터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상가들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제주시가지의 팽창 현상과 정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제주 시내의 상권은 주로 해안선 부근에 집중 분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구의 증가와 경제 발전에 따른 도시 확대 현상은 자연스럽게 한라산 쪽으로 옮겨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황]

남문 로터리중앙로남문로가 만나는 곳이며 제주읍성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남 초등학교와 연결되어 있고, 최근에는 제주 대학교 병원 쪽으로도 도로가 정비되어 있다.

현재 남문 로터리의 주변은 상권이 활성화되기 보다는 쇠락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동쪽에 있던 상점들이 유흥 음식점 등으로 종류가 점차 바뀌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다만 동쪽으로는 제주읍성이 구간적으로 복원되어 미관적으로 아주 좋아졌으며, 구불구불한 4차선 도로가 개설되어 아름다운 도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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