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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437
한자 金通精
영어음역 Kim Tongj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일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273년(원종 14)연표보기

[정의]

고려 후기 제주의 삼별초 항쟁을 이끈 장수.

[활동사항]

1270년(원종 11) 고려 조정은 몽고와 강화를 맺고 몽고가 요구해 왔던 개경 환도를 하기로 하였다. 삼별초는 개경 환도에 반대하고 배중손(裵仲孫) 등을 중심으로 대몽 항전을 결의하였다.

그 후 삼별초는 황해 일대를 경략하면서 진도로 내려가 진도를 거점으로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고 몽고와 고려에 완강히 저항하였다. 또한 삼별초 소속 부대가 고려 개경 정부의 관군이 방비하고 있던 탐라, 곧 제주도에 쳐들어가 관군과 싸워 이김으로써 제주도를 배후 거점으로 확보하였다.

1271년(원종 12) 5월 고려 장수 김방경(金方慶)과 원나라 장수 흔도(炘都)·홍다구(洪茶丘) 등이 이끄는 여몽연합군에 의해 진도의 삼별초는 토벌되었고, 배중손도 전사하였다. 이에 김통정이 삼별초의 우두머리 장수가 되어 남은 병력을 이끌고 제주도로 들어갔다.

김통정은 최후의 항몽 거점이 되었던 항파두리 토성 등을 쌓고 재기를 꾀하여 한때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였다. 남해현에 있던 삼별초의 유존혁(劉存奕)이 군선 80여 척을 이끌고 제주에 상륙하여 김통정 부대와 합류하였다. 원나라와 고려는 김통정에게 조카 김찬(金贊)과 이소(李邵) 등을 보내 회유하였지만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카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이는 등 항몽을 포기하지 않았다.

1273년(원종 14) 4월, 160척의 배와 육군·해군 병사 1만여 명을 이끌고 온 여몽연합군에 의해 항파두리 토성은 함락되었다. 그러나 김통정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70여 명을 이끌고 한라산으로 들어가 목매어 죽었다.

제주에는 항파두리와 함께 김통정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왔다. 제주에는 삼별초 군과 김통정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김통정을 다룬 전설이 곧 삼별초의 대몽 항쟁과 관계된 전설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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